『자동차를 만들면서 조립라인에서 나오는 기계음은 잘 짜여진 오케스트라의 협연이었고 기계음의 조화속에 차가 생산되는 모습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삶의 보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황으로 텅빈 공장안을 돌아보고 동작이 멈춰버린 기계를 어루만지며 하루빨리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재연되기를 눈물겹게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한국자동차산업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이 창립 30주년을 맞아 지난 70년과 80년 극심한 불황속에서의 조업단축과 감원을 회고하면서 한 말이다. 경영자가 아니더라도 생산현장에서 나오는 기계음의 거친 소리는 생명의 고동소리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다시 그 생명의 소리가 꺼져 버렸다. 단일공장으로 세계최대인 울산공장이 섰다. 표면적인 이유는 만도기계의 부품공급 중단이지만 극심한 경기침체에 따라 적정치(7만대)를 4만대 이상 초과하는 재고도 주요인이다. 재고누적에서도 주문에 의존하는 수출물량은 당장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언제 재가동될 지 알 수 없다. 만도기계가 부품생산을 재개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일부부품을 만든다 해도 얼어붙은 시장이 풀려 정상적인 판매가 이루어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깜깜한 내일」이다. 정명예회장이 「극심한 불황」으로 지적한 지난 80년의 경우 승용차시장은 사상 처음으로 감소(47.8%)했다. 하지만 상용차판매는 호조를 보여 전체내수는 증가(35.7%)했다. 그러나 요즘은 전체 판매마저 줄고있다. 내년에는 「IMF한파」까지 겹쳐 올해보다 「20% 감소한다」는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유가는 치솟고 특소세는 오르며 차고지증명제 등 수요억제책은 계속되고 있다. 자동차산업이 이 땅에 등장한 이래 최악의 침체며 위기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완전히 서버린 공장을 바라보는 정명예회장의 심정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는 29일은 국내 최대의 자동차업체며 한국을 세계 5위의 자동차대국으로 끌어올린 현대가 창립 30주년을 맞은 날이다. 현대자동차 임직원들은 뜻깊은 생일에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듣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
아기예수가 탄생한 성탄절. 정명예회장이 17년전에 멈춘 기계를 잡고 했던 「눈물겨운 기도」가 절실한 현실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