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이산(愚公移山).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남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일이지만 한가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우공이산'은 이상덕(56) 아주대 환경건설교통공학부 교수가 운영하는 '지반공학연구실(IGUA)'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 교수의 제자 60여명은 후배들의 연구를 위해 지난해 십시일반으로 1억원을 모아 교내 지반연구동을 짓는 데 보탰다. 이 교수는 동판에 이들의 이름을 새겨 연구동 건물 입구에 내걸어 제자들의 정성에 답했다. 그리고 연구동 이름을 '우공이산'으로 지었다. 우공이 자자손손 대를 이어가며 흙을 파서 나르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믿었듯 그 역시 제자들이 학번을 이어가며 지식을 전수하면 두터운 학문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박 3일 시험, 학과 전체 행사로 자리매김=실제로 지반공학연구실을 거쳐간 졸업생들은 서로는 물론 후배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졸업생들은 자체 콘퍼런스를 열기도 하고 학교에 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산업현장의 신공법을 전수하는 특강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졸업생들은 재학생들의 시험감독으로도 참여한다. 이 교수가 맡고 있는 '토질역학' 과목은 '무박 3일 시험'으로 유명하다. 학생들은 3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시험을 치른다. 물론 하루 세끼 밥은 먹고 야참도 제공된다. 학생이 원할 경우 기간 연장도 가능하다. 최장 1주일 동안 시험을 본 학생도 있다. 시험은 학기 말에 다른 과목 시험이 모두 끝난 다음 실시된다. 시험감독은 주간에는 조교가, 야간에는 졸업생이 담당한다. 2시간 간격으로 답안지를 제출하고 감독관이 바뀐다. 보통 500 문제가 출제되는데 문제지만 A4 용지로 100페이지에 달한다. 시험문제는 실무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내용 위주로 출제되는데 졸업생이 담당한다. 졸업생과 조교들이 답안지를 채점하는 데만 사흘이 걸린다. 처음부터 3일간 시험을 본 것은 아니다. 하루 종일 보다가 점점 늘어나 3일이 된 것이다. 이 교수는 "독일에서는 하루 종일 시험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서 착안했다"면서 "부임 당시 토목공학과가 생긴 지 얼마 안 돼 학생들도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무박 3일 시험이라는 형식 자체보다는 이를 통해 학생들이 전공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함께 자신감ㆍ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한다. 또 문제해결 능력뿐 아니라 토목ㆍ건설 분야 실무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집중력ㆍ정신력을 기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3일 동안 시험을 보면 한학기 동안 배운 것을 정리할 수 있어 공부가 많이 된다"면서 "학생들도 시험을 치르고 나서 뿌듯해하고 즐거워한다"고 말했다. 토질역학 기말고사는 마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비슷한 분위기에서 치러진다. 졸업생들이 후배들의 시험감독을 들어오고 1~2학년 후배들은 시험을 치르는 3학년 선배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응원한다. 이 교수는 "처음에는 조용히 치렀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학과 전체의 행사처럼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졸업생 사후관리 철저=이 교수는 강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단편적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전체적인 이론을 꿰뚫어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한다. 무엇보다 실무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현장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과장ㆍ부장급 졸업생을 초청, 종종 수업에 참여시키고 실험ㆍ현장실습 비중도 높였다. 서해안 갯벌에서 현장실험을 실시해 학생들이 직접 데이터를 얻도록 하고 스스로 채취한 시료를 이용해 실내실험을 하게 한다. 특히 이 교수의 고강도 교육은 학생들 사이에 '악명(?)'이 높다. 정규 수업시간으로는 부족해 과외시간(보통 수요일 저녁)을 이용해 보강을 한다. 최연준(건설환경토목공학부4)군은 "정규 수업은 이론 위주여서 실무에서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익히기가 쉽지 않다"면서 "매주 1~2차례 과외수업을 통해 배우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졸업생 사후관리를 중시한다. 제자들을 기업에 취업시키면서 그는 "평생 애프터서비스를 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한다. 졸업생들과 수시로 세미나를 하면서 필요로 하는 선진기술이 있으면 제공한다. 그러면 졸업생들도 현장의 생생한 정보를 이 교수에게 전달해주기 때문에 서로'윈윈'인 셈이다. 지금까지 이 교수의 지반공학연구실을 거쳐간 석ㆍ박사는 모두 96명. 기업체 대표를 포함해 토목ㆍ건설 분야에서 한몫을 해내고 있을 뿐 아니라 행정고시 기술직 1명을 비롯해 토질 및 기초기술사도 7명이나 배출했다. 육중한 토질분석 기계가 가득 들어찬 지반연구동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에 그동안 지반공학연구실이 배출한 박사 5명의 사진과 그들이 평소 매던 넥타이가 함께 들어있는 액자가 붙어 있다. 그는 "후배들이 앞선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목표를 세우고 정진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상 실무에서 기술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제자들이 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교수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지난 2005년 아주대 강의우수교수 교육대상을 받은 것을 비롯, 2007년과 2008년에도 최우수강의상과 교육우수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1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고 신공법 관련 특허가 11개에 이를 정도로 연구에도 열심이다. 이 교수는 "흙 만지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면서 "지금까지 새로운 공법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지만 앞으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학생들이 하는 것만큼 공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공이 아내의 반대와 힐난에도 불구하고 높이가 만길이나 되는 산을 퍼 날라 옮기려 했듯 그 역시 이공계 기피 현상 속에서 우직하게 공학자의 길을 가고 있다. /성행경기자
1954년생.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스튜트가르트대에서 지반 분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90년부터 아주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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