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찬가지로 기업이 스스로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 시장에서 경쟁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업에 관련된 규제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이 규제를 운용하는 주체들도 그때그때마다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같은 환경이 마련돼야만 비로소 빌 게이츠나 마이클 델 같은 세계적인 기업인이 탄생할 수 있고 기존의 업체들도 쉽게 변신할 수 있는 것이다.그런데 우리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 기업들이 나래를 펴고 훨훨 날 수 있도록 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옭죄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기업들을 다독거려서 지친 기업가 정신을 회복시켜주는 격려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고 잘못을 야단치는 회초리밖에 없다는 느낌이다. 해당 인·허가와 관련있는 정부부처를 제외하고 우리 귀에 익숙한 기관만 보더라도 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감사원이 있으며 검찰 등도 기업을 주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 관련 기관들을 감독하는 관청이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 금감원과 금감위의 행보를 보면 금융 관련 감독업무는 이 부처의 업무 중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기업활동 전반에 걸쳐 감독의 칼날을 높이 세우고 있는 듯하다. 물론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부진한 탓에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을 관장하는 금감위나 금감원이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은 인정한다. 따라서 금감위 위원장이 대기업들의 빅딜에 주도적인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자칫 해외에 정부의 관여로 잘못 비춰질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걱정되는 대목이다. 중재자의 역할을 넘어서 빅딜의 교통정리까지 맡는 것을 보면 기업들에 대해서는 무서운 규제기관이나 다름없다.
공정위도 마찬가지다. 30대 재벌그룹들은 특히 공정위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우선 올해부터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한다. 지난해 말부터 상황이 많이 변해 5대 재벌그룹을 제외하고서는 결합재무제표의 유용성이 그 산출비용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공정위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이를 작성해야 한다. 사실 기업들로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다. 공정위가 오래 전부터 동일그룹 계열사간의 상호지급보증이나 상호출자 또는 불공정 내부거래행위를 철저히 감독, 시행해왔더라면 지금과 같은 법석은 떨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새삼스럽게 뽑아든 공정위의 칼날 때문에 기업들은 고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공정위가 갑작스럽게 활동을 재개했기 때문에 더 큰 짐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
감사원 감사도 무시 못할 회초리다. 기업에 관련된 민원이나 투서가 발생하
면 감사원이 그대로 넘어가질 않는다. 뿐만 아니라 어떤 공기업 가운데는 겹치기 감사로 1년 내내 감사를 받았던 곳이 있다. 공인회계사의 감사, 국회의 국정감사, 감사원 감사를 연중행사로 치른 것이다. 감사 준비에 드는 노력과 경비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 가끔씩 당하는 국세청의 세무사찰도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또다른 회초리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업들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면서 야단칠 구실만 찾은 것이 사실이다. 기업들에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경제를 오늘의 그것으로 지탱해온 것도 기업이다. 이제 회초리를 거두고 기업·기업인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줄 때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