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회장은 지난 59년 일본으로 건너가 무역업으로 성공한 후 68년 박정희(朴正熙)정권의 해외교포 자본유치정책에 호응, 일본에서 모은 1,000만달러 전액을 투자해 풍산금속을 설립했다. 그는 6·25 사변 중 인민군에 대한 국군의 최후 저지선으로 꽃다운 젊은이들이 산화했던 경주시 안강읍을 공장부지로 선택, 기업인으로서 자주국방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그는 모든 경영활동의 궁극적 목표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이며 그 방법론으로서 「전문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柳회장의 이같은 경영철학으로 풍산은 자사 사옥조차 마련하지 않고 오로지 구리제품 생산에만 주력하고 있다. 柳회장의 「한우물 파기 정신」은 朴대통령의 사업지원제안을 거절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 73년 안강 종합탄약공장 준공식에 참여한 朴대통령이 구리제품 외의 다른 산업에 관심이 있으면 얼마든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제의했으나 柳회장은 이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柳회장은 지난 5일 국가 기간산업 육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柳회장은 유교적 가치관을 고수한 경영인으로 평가된다. 그는 『조상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겠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유교적 가치관을 전파하는 데도 애를 썼다. 그는 매년 풍산의 중견사원들이 안동의 병산(屛山)서원에서 연수를 받도록 해 이같은 서원연수가 미국에까지 알려지기도 했다. 柳회장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의 12대손으로 「서애기념사업회」를 설립, 각종 추모사업을 벌여왔다.
유족으로는 류진(柳津) 풍산 사장 등 2남2녀가 있으며 노신영(盧信永) 전 국무총리와는 사돈지간이다.
정문재기자TIMOTH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