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통화가치 절하경쟁, 新보호무역주의 고착화 우려

환율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국의 통화가치 절하 경쟁은 자유무역주의를 저해하는 신(新) 보호무역주의를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큰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한 국가가 수출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에 나설 경우 상대 국가가 무역수지 방어를 위해 이를 뒤따르는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이어져 각국 화폐가 동반 평가절하 될 경우 수출 가격 경쟁력은 상쇄되고 가뜩이나 동반 디플레이션 우려로 골치를 썩고 있는 세계 경제에 대한 압력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또 통화가치 절하가 더 이상 수출 증가에 `약발`이 먹히지 않게 되면 보조금 지급, 관세 인상 등 보호무역 조치가 잇따르고 이는 다시 추가 평가절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아시안월스리트저널(AWSJ)은 이와 관련, 각국 정부가 통화 가치를 평가절하 하려는 목적은 다른 국가로부터 경제 성장과 시장을 빼앗아 오는 대신 디플레이션과 같은 자국의 문제는 다른 국가로 떠 넘기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평가절하 수단을 통해 `약(藥)`은 내 것으로 취하고 `독(毒)`은 다른 나라로 떠 넘기려는 속셈이란 것. 이 같은 우려는 최근의 상황 논리와 맞물리면서 실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모건스탠리 런던 사무소의 수석 외환 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브 젠은 “인플레이션이 완만해지고 물가가 하락하면서 디플레이션이 완연해지는 현재 상황에서는 어떤 국가도 강한 통화정책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90년대 말에는 강한 통화정책이 주류를 이뤘지만 지금은 약한 통화정책으로 바뀌었다”며 “미국과 일본, 유럽은 모두 이 같은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통화의 동반 평가절하에 뒤따르는 이 같은 위험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지역에서 특히 높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 지난 97년 외환위기 당시 아시아 각국은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에 나서 결국 아시아 통화 가치가 평균 15% 정도 절하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이는 수출 경쟁력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아시아 지역을 `싸구려 생산기지`로 전락시키는 부작용만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각국이 대부분 이런 시나리오를 충분히 예측하면서도 정책적 공조를 통해 동반 평가절하를 막기는 어렵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경험적으로 무역 관련 분쟁은 윈-윈(Win-Win) 전략으로 가기보다는 `상대방이 1을 가지면 나는 그만큼 손해`라는 제로섬(Zerosum) 게임의 법칙에 지배돼 왔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가 오랜 불황을 털고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구나 이웃 나라 사정을 봐주기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김창익기자 windo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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