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필] 차례

목장의 소들이 물을 마시는데 한줄로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미물인 저 소들도 줄을 서고 질서를 지키는데라고 말했다가 핀잔을 들었다. 서열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며 서열대로 줄을 선 것뿐이지 질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소에게 물어보지 않아 확실치는 않으나 그 서열은 힘 겨루기에따라 정해진다고 한다.연말을 맞아 여러가지 모임이 잦다. 그중엔 「역대 초청모임」이란 것도 있다. 주로 관공서의 장(長)을 지낸 분들을 현임의 장이 초청하여 선후배의 정을 돋우는 모임이다. 기념사진이 신문에 실리기도 한다. 이 「역대 초청모임」에도 서열은 물론 있다. 대수(代數)가 적을수록 선배이며 대수가 뒤로 갈수록 후배가 된다. 초청된 사람이 많으면 선배는 의자에 앉고 후배는 뒷줄에 서서 기념촬영을 한다. 젊고 힘 센 사람 혹은 현임이 의자에 앉는 법은 없다. 선배를 위로하는 모임뿐만 아니라 연공서열은 사회조직의 곳곳에 배어있다. 나이를 따지고 졸업기수와 입사기수를 준거한다. 연공서열이 아주 철저한 곳은 일본이다. 고위 공무원이 퇴직한뒤 민간기업으로 갈 경우 (소위 낙하산)에도 그 기업의 서열에 맞춘다. 대개 대학 졸업연도가 그 기준이 된다. 그 연공서열을 깨자고 한다. 우리 기업이 앞장 서고있다. 능력과 성과에 따라 승진과 보수를 정한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30대 이사, 40대 사장이 선배를 제치고 대기업그룹에서 떼로 탄생되리라 한다. 하긴 능력주의 성과주의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미국 기업들은 옛날부터 그래 왔다. 세계를 호령하는 마이크로소프트는 능력 및 성과주의를 철저히 이행하는 회사로 이름이 나 있다. 연공서열주의는 인공(人工)의 것이며 능력주의 성과주의가 자연의 이치에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능력은 사람에따라 다르며 그 능력도 늙은 사자가 무리에서 쫓겨나듯 세월에따라 절정과 쇠퇴를 따르게 되니 젊고 강한자가 먼저 물을 먹는다고 탓할 일이 아니다. 시장(市場)에서 죽기 살기를 겨루어야 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강한 자를 우대하는 자연의 이치를 택한다하여 이상할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힘을 겨루어 물을 마시는 순서를 정하는 방법은 소떼에게만 있어온 이치가 아니라 사실은 인간사회에도 옛날부터 있어온 이치이다. 경쟁이 그것이다. 단, 힘 겨루기로만 물 마시는 차례를 정하려든다면 시도 때도 없이 사방에서 힘을 겨루어야 할것인즉 세상은 매우 살벌해지기는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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