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가난한 국가는 세계화로 더 가난해진다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
(에릭 라이너트 지음, 부키 펴냄)


1485년 왕위에 오른 영국 왕 헨리 7세는 부르고뉴의 부가 모직 산업에서 나오지만 그 원자재인 양모와 양모를 세척하는 데 사용되는 재료는 영국에서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모직 산업 육성에 힘을 기울였다. 영국은 경제 발전의 기반이 되는 자국 산업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한편 혁신적으로 발전시킨 덕에 19세기까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군림했다.

반면 스페인은 영국과 달리 경제 발전에 실패한 나라로 낙인 찍힌다. 과거 스페인은 18세기 포르투갈의 한 경제학자가 말했듯이 “최고급 실크에 대해 설명하려면 그라나다산 물건이라고 하면 그만”일 정도로 제조업이 부흥했다. 하지만 16세기 이후 몰락을 거듭해 18세기에는 거의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스페인 경제 발전이 실패한 이유는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고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이 스페인으로 흘러들어갔지만 이런 막대한 재원이 생산 시스템에 투자되지 않고 탈 산업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출신 경제학자인 에릭 라이너트 에스토니아 탈린 공과대 교수는 유럽 경제 발전의 비결, 그 과정에서 성공과 실패로 나뉘게 된 원인, 선진국과 후진국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이유 등을 분석했다.

영국 같은 유럽 선진국은 르네상스 시기부터 경제 발전의 비밀, 즉 성공적인 산업보호의 중요성을 눈치채고 이를 실천함으로써 개발도상국 처지에서 벗어났다는 것. 그러나 정작 자신들이 경제 발전을 이룬 후에는 제3세계 국가를 상대로 세계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시장 개방을 독촉하는 방식으로 ‘가난한 국가는 계속 가난하도록’ 옭아매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특히 20세기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 논리는 영국의 그것과 닮은꼴이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을 포함해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등은 모두 관세 보호 하에 미국을 산업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부국이 하나같이 자유 무역이 없었던, 산업 보호의 혜택을 누린 덕택에 경제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으며 부를 어느 정도 축적한 뒤에는 자유 무역을 활용해 그 이점을 누리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영원히 없는 것일까. 저자는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을 보호하고 이익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부자 나라의 대중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지구촌은 흔들고 있는 ‘99%의 역습’이 자국 내에 한정되지 않고 전세계 빈국의 문제까지 들춰내야 진정한 자본주의의 민주화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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