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 옆에 페루화폐 찍는 윤전기 윙윙

5만원권 발행 5년… 조폐공사 화폐본부 가보니
5만원권 발행 후 매출 타격… 해외지폐 제조로 수익 보전
8단계 검수 거치는 5만원권 위조방지장치만 22개 적용
하루 560억원 찍어내지만 한은 발행승인 나야 '돈값'

한국조폐공사 직원이 19일 경상북도 경산시에 위치한 조폐공사 화폐본부 내 공장에서 갓 생산된 5만원권 중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돋보기로 검사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조폐공사


우리나라의 유일한 '돈 공장'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서울역에서 경산역까지 KTX를 타고 2시간을 달린 뒤 버스로 외딴 지역을 20분 더 들어가서야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가 나타났다.

돈을 찍어내는 공장인 만큼 삼엄한 경비도 통과해야 했다. 정문에서 신분 확인을 하고 내부를 촬영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는 등 방문 허가를 받기까지 30여분이 걸렸다. 모든 절차를 마치자 드디어 1원짜리 동전부터 5만원권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돈이 생산되는 공장에 들어섰다. 이 공장에선 하루 최대 560억원이 '생산'된다.

공장 안에 들어서자 엄청나게 시끄러운 기계 소리가 손님을 맞았다. 소음 탓에 조폐공사 측 직원은 기자들에게 이어폰을 제공하고 마이크로 설명을 이어갔다. 가장 관심이 쏠린 것은 아무래도 우리나라 최고액권인 5만원권 제조과정이었다. 가장 먼저 원재료인 목화(솜)를 종이 형태로 만들어 지폐용지를 만든다. 그 위에 홀로그램을 붙이는 것에서 최종 검수까지 총 8단계를 거치니 5만원권이 완전한 모습을 갖췄다. 5만원권에 들어가는 위조방지장치는 띠형 홀로그램 등 총 22개나 된다. 유럽의 최고액권인 100유로의 위조방지장치가 21개, 미국의 100달러권과 일본의 1만엔이 각각 14개인 것보다 더 많다.

완성된 5만원권은 농구장 크기 만한 물류창고에 사람 키보다 높은 높이로 차곡차곡 쌓였다. 종이끈으로 묶은 한 묶음은 500만원(100장), 이것을 비닐로 포장한 덩어리는 5,000만원(1,000장), 이것을 다시 바둑판 크기로 합쳐놓은 큰 뭉치는 5억원(1만장)이다. 5억원 무게는 10㎏ 정도 되는데 보통 5만원권을 007가방에 꽉 차게 눌러 담았을 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화폐본부에 쌓인 5만원권 다발은 아직 '돈'이 아니다. 5만원권은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 한국은행으로 납품된 뒤 한은 금고에서 발행이 돼야 비로소 화폐로서의 기능을 가진다. 화폐공사 관계자는 "납품될 때는 개조된 대형 트럭에 의해 수송되는데 밤에는 도난 우려가 높아 한은에 오후4시30분 이전에 도착할 수 없으면 다음날로 이송을 미룬다"고 설명했다. 차량에는 이동추적장치(GPS)가 부착돼 이동상황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며 수송 차량에는 화폐공사 직원과 한국은행 직원, 실탄을 소지한 경찰과 군(軍)까지 동원된다. 공사 관계자는 "복수의 잠금장치가 달려 있으며 각각의 잠금장치를 여는 비밀번호를 모두 아는 사람은 없다"며 "하나의 잠금장치를 열 수 있는 사람이 이를 열면 다른 사람이 다음 잠금장치를 여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활발하게 돌아가는 윤전기 사이를 지날 때 낯선 붉은색 지폐들이 눈에 띄었다. 페루에 수출될 화폐(50누에보 솔)라고 말했다. 화폐에는 페루의 대표 저널리스트이자 시인인 아브라함 발델로마르가 동그란 안경을 낀 채 5만원권 속 신사임당 옆에서 포즈를 잡고 있었다. 김화동 조폐공사 사장은 "지난 2009년 5만원권이 나온 이후 전체 화폐 제조량도 줄고 10만원권 자기앞 수표 제조량도 줄어 공사 경영에 어려움이 있다"며 "외국 화폐를 제조해 수출하는 것에서 수익을 확보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2009년 6월 5만원권이 나온 이후 전체 화폐 제조량은 크게 줄면서 조폐공사는 페루 화폐 외에도 백화점 상품권, 전통시장 상품권, 우표 등 총 69가지 상품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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