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비정규직법 표류 어디까지

‘비정규직 근로자’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부터다. 기업이 종업원의 고용을 보장하고 종업원은 회사에 충성을 다하는 종신고용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계약직ㆍ파견직ㆍ시간제ㆍ특수고용직 등 이름도 어려운 다양한 고용 형태가 빠르게 등장했다. 유례 없는 경제난 속에 근로자들은 언제라도 해고될 수 있고 월급도 적게 받는 비정규직 일자리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 364만명이던 비정규직 근로자는 지난해 548만명으로 급증했다. 정규직 임금의 60% 밖에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의 가파른 증가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계층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무분별한 남용을 막아보자며 노사정위원회가 비정규직 보호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 2001년. 그러나 5년이 다 됐지만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현실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됐다. 노사정위에서 2년간 협의만 하다 시한을 넘겼고 정부 입법 준비에 1년, 국회에 정부안이 계류된 지 1년 반 등 5년 동안 논의만 무성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4월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여러 차례 장담했다. 그러나 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정치권 갈등에 여당 스스로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포기했다. 야당 역시 잘한 것은 없다. 한나라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최연희 의원 성추문 파문을 덮기 위해 전격적으로 여당의 상임위 통과에 협력해놓고는 그 뒤 당리당략 차원에서 입장을 여러 차례 바꿨다.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한다는 민주노동당은 계약직 근로자 채용 사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여러 차례 물리력을 동원, 국회 회의장을 점거했다. 민노당은 이번 국회에서도 비정규직법안 처리를 연기하면 여당의 민생법안 처리에 협력하겠다며 법안 처리의 발목을 잡았다. 정치인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귀에는 6,000여 여성 비정규직 근로자가 가입한 전국여성노조 나지현 위원장의 “심각한 차별에 시달리는 현장 비정규 노동자들의 심정에서는 미흡하나마 비정규직법안이 통과돼 차별 시정 기준이 하루빨리 법으로 제시돼야 한다”는 절박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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