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도 빈지갑 '가계發 소비한파' 우려

■ 가계살림 환란때보다 악화
경매부동산 급증등 잠재파산자 최대 120만명
수출 부진에 내수회복 둔화 "경제 수렁으로"
고용→소비→투자증가 선순환구조도 무너져

소비가 살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될까. 고유가ㆍ원고 등으로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도가 하락할 수밖에 없는 가운데 소비 위축은 투자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 경제를 깊은 수렁으로 이끌 것이 분명하다. 수출 대신 경제의 희망봉으로 부상한 소비에 대해 정부는 ‘견조한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낙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과연 그럴까.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소비를 이끌 우리 가계가 파산위기에 내몰리면서 ‘가계발(發) 소비 한파’마저 우려되고 있다. 가계발 소비한파는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최근의 개인파산 급증현상과 정책과제’라는 보고서에서 어느 정도 예견됐다. 보고서는 전체 가구의 2~7%(30만~100만가구)를 잠재 파산 가능 가구로 예측했고 배우자 등 가족을 고려해볼 때 잠재 파산자가 최소 36만명에서 최대 12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파산위기 가계 급증=파산위기에 처한 가계의 급증은 법원 경매부동산 물건 추이에서 잘 드러난다. 살던 집이 경매로 나왔다는 것은 이미 그 집주인이 파산상태이거나 파산 직전의 상태임을 의미한다. 참여정부 들어 법원경매로 나온 부동산 물건을 보면 예사롭지 않다. 총 물건 기준으로는 지난 2003년 32만6,829건에서 2004년에는 46만5,111건으로 늘더니 지난해에는 48만8,389건으로 증가했다. 2003년에 비해서는 49.4% 증가했고 월 평균으로는 2003년 2만건에서 최근에는 4만건에 육박한 상태다. 가계 파산 징후는 일터를 잃은 가장이 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과거 직장이 있었으나 여러 이유로 직장을 잃고 실업자 상태가 된 전직(前職) 실업자 현황을 보면 이것이 잘 드러난다. 전직 실업자는 2003년 74만6,000명에 불과했으나 2004년 80만7,000명, 2005년에는 84만5,000명을 기록했다. 이렇다 보니 실업급여로 가정을 유지하는 가장도 늘고 있다. 노동부 자료에 의하면 실업급여 수혜자는 2003년 14만8,000명에서 2004년 19만3,000명, 2005년 22만7,000명으로 3년새 53.3% 증가했다. ◇중산층도 가계적자 심각=통계청의 가계수지 동향을 보면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가계수지가 썩 좋지 않음이 드러난다. 97년부터 올 1ㆍ4분기까지의 도시 근로자 가구의 5분위별 흑자액 추이를 보면 중산층ㆍ하위층의 재정수지가 말이 아니다. 흑자액은 소득에서 지출(소비+비소비지출)을 뺀 것으로 가구가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돈이다. 흑자액 규모가 크다는 것은 앞으로 소비여력이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분석 결과 중산층ㆍ하위층에 속하는 1~3분위(60%)의 경우 흑자액이 외환위기 당시인 97년 수준보다 악화됐거나 거의 비슷하다. 나머지 40% 가량만이 가계살림에 여유가 있을 뿐이다. 가계 저축률은 2002년 2.0%에서 2003년 3.6%, 2004년 5.7%로 2년 연속 증가한 뒤 2005년에는 3.9%로 추락했다. 저축률 하락과 함께 소비는 회복됐다. 하지만 파산가계가 늘고 있는 점을 고려해볼 때 거꾸로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고용→소비→투자증가’ 붕괴=파산 위기의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재취업을 통한 소득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상장사협회 분석에 의하면 5대 그룹의 취업자는 1개사 평균 2004년 1,051명에서 지난해에는 1,052명으로 1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비제조업체의 경우 1개사당 평균 근로자가 2004년 1,360명에서 지난해 1,327명으로 2.4% 감소했다. 비교적 안정된 직장으로 꼽히는 상장사의 경우 신규 취업문도 좁은데 재취업은 더더욱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가계파산의 급증세가 예사롭지 않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고용→소비→투자 증가 등의 선순환 구조도 붕괴되고 있는 것. 최근 들어 경기 확장국면이 짧아진 것도 소비 중추세력인 가계에서 파산이 늘면서 소비가 뒤따르지 않는 것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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