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열린 우리당 총무위원장의 발언으로 SK에 이어 삼성 등 5대 그룹이 정치자금 정국의 덫에 걸려 들게 되자 재계는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실명으로 거론되지 않은 기업들도 말을 극도로 아끼면서도, 불똥이 전체 기업으로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돈을 준 기업들의 명단이 이런 식으로 노출될 경우 대외 신인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며 “낡은 관행을 바꾸는 미래적 관점에서 현 사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전경련 고위 관계자는 “기업들이 구체적인 대가를 바라고 준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선의를 갖고 한 일인데 회사 이름이 오르내리고 불려 다니는 게 안타깝다”며 “하루빨리 돈이 덜 드는 선거공영제의 확립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법정 한도내에서 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도 “이런 혼란이 조속히 마무리 돼서 기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LG그룹은 민감한 사안임을 반영해 별도의 멘트를 자제한 채, “법정 한도내에서 정당 후원금을 기부했고 모두 투명하게 영수증 처리했다”며 짤막하게 답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그룹 임원은 “왜 이렇게 기업들을 못살게 구는지 모르겠다”며 “정치자금 문제가 기업을 고리로 정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현 사태가 조기 수습돼, 고비용 정치구조의 틀을 깨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는 뜻도 피력했다. 가뜩이나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과거의 불투명성만을 계속해서 들춰낼 경우 정치권과 기업 모두 공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