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력만 있는 대통령이죠, 더 힘센 정치 대통령은 여의도에 있지 않습니까.”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캠프를 거쳐 청와대에 입성한 한나라당 인사의 말이다. 정치에 문외한인 대통령이 행정관료 같다는 얘기다.
실제로 대통령은 정무 사항을 보고받기 꺼린다고 한다. 정무는 숫자와 명확한 사실로 근거할 수 없기 때문에 가치가 낮다는 것이다. 참모가 내년 지방선거 공천을 의식한 국회의원들의 움직임, 겉으로는 한 계파로 알려진 두 인사의 미묘한 관계 등을 말하면 대통령은 눈을 감아 버린단다. 대통령에게 정치란 이처럼 내용 없는 보고서와 같은지 모르겠다.
어쩌면 대통령의 시선은 일반 국민과 가장 비슷할 테다. 국민에게 정치가 농담 소재로 전락한 지는 이미 오래다. 국민이 보기에 여의도 국회에는 권력을 탐하는 개인이 있을 뿐이다.
더구나 실용주의 중도를 표방한 정부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불필요한 논쟁을 벌이는 국회의원을 보는 눈이 고울 리 없다.
하지만 정부가 국정 운영을 실용적으로 하려면 무엇보다 정치를 활용해야 한다. 국회는 대한민국의 온갖 이해관계가 모여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어떤 정책을 추진하든 국회라는 ‘허브’를 거쳐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와 속도전을 강조했다. 국회를 통한 논의는 될 수 있으면 피하거나 단축했다. 그 결과 부작용과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노후차 교체 세 감면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아직도 바뀌지 않았다. 최근에 발표한 ‘사교육 없는 학교’ 지원 방안도 마찬가지다. 재원이 없다는 점 때문에 비판을 받았는데 “현장 목소리를 담는 당정협의 없이 발표하니 부작용을 잡아내지 못한 것”이라는 게 한나라당 관계자의 말이다.
정치는 경제ㆍ사회ㆍ문화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항목이 아니다. 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모든 사안에서 지도자가 뜻을 펼치기 위한 도구다. 이명박 대통령은 행정관료가 아니라 한 나라의 지도자이고 실용주의를 약속했다. 그가 일반 국민과 같이 팔짱을 끼고 서서 정치를 탓하기보다 정치를 활용하는 지혜를 보여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