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은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5주년 된 날이었습니다. 당시 수백만 명의 장병들이 참전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들과 함께 전쟁터를 누빈 말도 있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아침해(?~1968·사진)'는 신설동 경마장에서 경주마로 활약하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미 해병대에 입대해 탄약과 포탄을 날랐던 군마입니다. 말은 겁이 많은 동물 가운데 하나인데 군인들도 도망가곤 하는 전장에서 끝까지 자신의 역할을 해냈기에 같은 부대원들이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의미의 '레클리스(Reckless)'라는 새 이름을 붙여줬다고 합니다.
특히 지난 1953년 3월26일부터 닷새간 중공군과 맞붙은 '네바다 전투(연천전투)'에서 레클리스는 보급기지와 최전방고지를 모두 386회나 왕복하며 탄약 수백톤을 날라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산에서 부상자를 태우고 내려와 다시 포탄을 싣고 산에 올랐으며 눈과 다리에 총상을 입고도 임무를 완수해 전우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휴전이 되자 레클리스는 1954년 병장 계급을 부여받고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전쟁영웅에 대한 미국의 예우는 이후에도 매우 극진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해병 1사단에서 하사로 진급한 레클리스는 1960년 성대한 전역식까지 치르며 은퇴했고 미국 상이용사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퍼플하트훈장을 비롯해 미국 대통령 표창장, 유엔 종군기장 등 많은 훈장과 상도 받았습니다.
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났지만 레클리스에 대한 미국인들의 추모 열기는 식지 않고 있습니다.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을 위한 홈페이지가 만들어졌으며 버지니아 관티코 해병대 본부에는 추모기념관이 마련되고 동상까지 설립됐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2014년 6월 한국마사회도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우리나라의 말 문화를 빛낸 위대한 영웅으로 아침해를 선정하고 그 업적을 기렸습니다.
동력기관의 등장으로 말의 활용 범위가 급작스럽게 축소됐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이처럼 20세기 중반인 제2차 세계대전까지 군마들이 활약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또 한번 6·25를 보내면서 아침해를 비롯해 전쟁터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말의 희생도 기억했으면 합니다.
/김정희(말박물관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