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Story] 홍종순 에리트베이직 대표


‘평범한 월급쟁이에서 상장사 대주주로’ 국내 1위 학생복 브랜드 에리트베이직의 수장, 홍종순(55ㆍ사진) 대표의 ‘명함’이다. 이 땅 직장인들의 소망을 한 몸에 이뤄낸 셈이지만 그 시작은 어찌 보면 다소 평범했다. 대학 졸업 뒤 삼성그룹 공채 19기 입사. ‘안정된’ 직장을 찾아 앞날을 설계하는 다수 젊은이들과 큰 차이는 없었다. 그 역시 휘하 사원의 앞날까지 책임져야 할 독립 기업의 ‘수장’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겸손한 말투와는 달리 그의 곳곳에선 오늘을 가능케 한 ‘이력’이 묻어났다. 특히 숱한 부침을 겪어 낸 ‘에리트베이직’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그의 존재는 더 돋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60여명의 직원이 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돌아서면 월급날이 돌아오는 통에 ‘월급을 제대로 지급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 한동안 가장 큰 고민이었지요” 에리트베이직은 1960년대 말 제일모직 제일합섬을 통해 등장,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내 대표 학생복으로 사랑받고 있는 브랜드다. 60년대 이후 에리트베이직은 교복의 대명사처럼 통했다.에리트학생복은 국내 최초로 폴리에스테르와 레이온의 혼방 제품을 생산하는 등 품질 면에서 인정받으며 학생복 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했었다. 하지만 교복이 사라졌다가 다시 부활한 86년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경쟁사는 원단 영업 대신 ‘완제품 판매’ 방식을 도입해 시장을 장악해 갔고 모 기업이었던 제일모직에서도 경쟁 브랜드를 출시, 에리트베이직의 점유율은 갈수록 추락해 갔다. 위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삼성그룹에서 분리 독립했던 새한(구 제일합섬)이 2002년 워크아웃 위기에 놓이면서 에리트베이직은 또 한 번 존폐 기로에 서야 했다. “처음 학생복을 맡게 된 97년 당시 국내 학생복에도 브랜드화가 진행되며 폭발적인 광고전이 뒤따르고 있었어요. 경쟁사에 비해 에리트베이직이 늦은 셈이었지요. 당시 스타일을 강조한 브랜드들이 인기였는데 디자인과 실용성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학생복 최초로 정욱준 디자이너와 노승은 디자이너를 영입해 감수를 맡겼습니다. 보다 나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시도가 먹히면서 점유율도 차차 회복돼 갔지요” 원단 영업 분야에서 일했던 그는 97년 ‘낯선’ 학생복 시장에 뛰어들어 완제품 도입 등으로 브랜드를 정비, 경쟁력을 보강해 갔다. 기업의 워크아웃 위기였던 2002년 브랜드가 ‘방출’되자 이번엔 직원들의 퇴직금이었던 8억원을 모아 에리트베이직을 세운다. 이후 학생복 시장 점유율 1위를 다시 탈환한 것이 그로부터 만 4년 만인 2006년. 당초 목표대로 기업을 주식시장에 상장시킨 것이 이로부터 3년 뒤인 2009년의 일이었다. 말 그대로 업계가 놀랄 만한 ‘속전속결’ 이었다. “대기업 그늘에서 벗어나고 나니 처음에는 만나 주는 은행 조차 없었습니다.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를 몸소 체험해야 했지요. 첫 월급날 집에 들어갔더니 아내가 ‘월급이 나오긴 나왔다’며 웃던 게 기억납니다” 홍 대표는 직원들의 ‘아버지’로 신임을 받으며 오늘의 에리트베이직을 일궈갔다. 종업원 지주회사이기에 초반 60여명의 직원들 역시 대기업 출신이라는 자존심을 사양한 채 밤낮 없이 매진, 도약을 이뤄내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교복 시장’은 다른 복종과는 달리 한계도 분명한 사업이다. 학생수는 일정한데다 1위 브랜드를 탈환하고 나니 매년 비슷한 패턴의 영업이 반복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홍대표는 토털 패션브랜드로의 전환과 기업공개로 또 한번의 도약에 나섰다. “초반엔 일본과 중국 등 주변 국가에도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독과점 구조가 뿌리깊고 중국은 아직도 경쟁 체제가 잡히지 않아 신통한 성과가 보이지 않았지요. 그래서 패션전문 기업으로의 도약을 더 꿈꾸게 됐습니다.” 에리트베이직은 기존 유니폼 시장에 브랜드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윌비’를 런칭해 시장을 주도해가는 한편 2003년 스포츠 전문 브랜드인 ‘엘케이스포츠를 런칭해 사업 다각화에도 나섰다. 교복과는 다른 30~40대를 주타깃으로 기능성과 패션성을 두루 갖춘 레저 브랜드로 시장을 개척해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이 대중화되면서 합리적인 가격을 갖춘 브랜드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어 에리트베이직의 효자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밖에 지난해 상장으로 얻게 된 과실로는 남성 비즈니스캐주얼 브랜드인 ‘지오’를 인수한 것이다. 교복을 벗게 된 남성들이 찾게 되는 브랜드를 목표로 빠른 점유율 상승세를 보이며 눈길을 끌고 있는 중이다. 현재 패션시장의 최대 화두이자 ‘황금맥’인 아웃도어시장과 남성복 시장에 모두 진출한 셈이다. ‘가능성’과 ‘빈 시장’를 찾아 움직여 온 50대 CEO의 통찰력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중국 노동 비용이 급증한 탓에 최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세워 생산기지를 이전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수익성이 높은 주문자부착상표생산(OEM) 영업도 더 확대해 영업이익률 향상에 기여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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