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Story] 노정석 파이브락스 대표

사명감 없는 창업은 그냥 장사… 시장의 필요 읽어야 성공하죠
KAIST 대학생시절 해킹에 흠뻑 빠져 당시 포항공대와 해킹전쟁으로 유명세
회사 네번이나 차려 자칭 '창업전문가' 창업은 다른사람 먹거리 책임지는 것
무엇인가를 이루겠다는 의지 충만해야



한 번도 어렵다는 창업에 네 번이나 도전한 남자가 있다. 세속의 기준으로는 두 번은 성공하고 한 번은 실패의 쓴맛을 봤다. 네 번째 도전은 진행 중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창업이 성공이었다고 말한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업체 '파이브락스(5Rocks)'의 창업자 노정석(38·사진) 대표(현 최고전략책임자·CSO)의 이야기다.

그가 네 번째로 창업한 파이브락스는 모바일 게임에 특화된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비스를 이용하면 게임 이용자를 세분화해 그룹별로 나눌 수 있고 각 그룹에 대한 분석은 물론 다른 그룹과의 비교 분석도 가능하다. 서비스 이용 업체는 실시간으로 분석 내용을 받아볼 수 있다.

노 대표는 "원래는 모바일 데이터 분석 툴(Tool)로 회사 내부용으로 쓰려고 했는데 우연히 회사에 놀러온 모바일 게임 관계자가 '이런 서비스는 꼭 상용화해야 한다'고 당부를 했다"며 "'필요'를 직감했다"고 말했다. 파이브락스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 대표는 창업의 순간마다 사람들의 '필요'를 읽어내려 노력했다.

지금이야 '창업 전문가'로 통하지만 노 대표는 대학 시절 그저 컴퓨터와 인터넷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그는 "어릴 때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만지다가 결국 고장을 내는 아이였다"며 "하도 산만해 어머니가 잠시도 못 참는다 해서 '5분 발차'라는 별명을 지어주셨다"고 말했다.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전주를 떠나본 일이 없던 그가 처음으로 고향을 벗어난 것은 1994년 KAIST에 입학하면서다.

당시 KAIST는 국내에서 인터넷이 설치된 몇 안 되는 대학이었다. KAIST에서 인터넷과 더불어 '더 산만한 친구들'을 만난 노 대표는 해킹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사실 노 대표를 맨 먼저 세상에 알린 것은 KAIST 해킹 동아리 '쿠스'와 포항공대 해킹 동아리 '플러스' 사이에 벌어졌던 해킹 전쟁이었다. 나중에 '사과 전쟁'이라고 불리며 이를 다룬 책까지 나왔던 사건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그러던 노 대표가 처음 창업과 맞닥뜨린 것은 대학 3학년 2학기 때였다. 10년 선배가 그를 찾아와 대뜸 '창업하자'고 제안한 것. 고민에 빠진 노 대표는 머릿속에 잠복해 있던 한 가지 기억을 떠올렸다.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당시 정철 휴먼컴퓨터 사장의 다큐멘터리를 본 것이다.

그는 "그전까지 회사는 나라처럼 그냥 세상에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며 "다큐멘터리를 보고 '회사를 자기 마음대로 만들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1997년 보안업체 '인젠' 설립에 참여하게 된다. 노 대표를 이끈 10년 선배는 임병동 인젠 대표다.

인젠은 설립하자마자 빠르게 성장했다. 인젠은 '해커들이 만든 보안업체'라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아 기술력을 인정받고 지난 2002년 코스닥에 상장됐다. 자신감을 얻은 노 대표는 이후 인젠에서 나와 2번째 창업에 도전한다.

보안업체인 '젠터스'였다. 젠터스의 사업 계획은 획기적이었다. 노 대표는 "요즘으로 치면 빅데이터 분석이 사업 내용이었다"며 "해커들의 공격을 파악하기 위해 수많은 사건들의 상관관계를 파악해 전체 맥락을 보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가 이런 식의 데이터 분석에 관심이 높다는 말을 듣고 직접 제안서를 들고 미국에 찾아갈 만큼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이나 국내에서 실제 계약으로 이뤄진 사례는 없었다.

그는 "돌이켜 떠올리면 시장의 수요보다 너무 앞서나간 측면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시장의 필요를 읽었지만 너무 빨랐던 것이다. 당시 벤처 붐이 급격하게 꺼지던 것도 실패의 요인이다.

결국 있는 돈으로 직원들 월급 주고 회사는 1년 만에 청산했다.

해킹 전문성만 믿고 덤벼온 청년은 처음으로 쓴맛을 봤다. "한 번 바닥에 떨어지고 나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때부터 '철이 들어' 공부를 시작했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때 읽은 책 중 하나가 '진화론'이다. 노 대표는 "매일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고집 세고 자신만만한 해커'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학습은 그를 다시 새로운 도전의 길로 이끌었다. 노 대표는 "힘들 때 '가장 안전한 것은 요새를 짓는 게 아니라 시장 한가운데 서는 것'이란 말을 들었는데 매우 인상 깊었다"고 했다. 사실 창업 말고는 다른 재주가 없었다는 점도 노 대표의 '창업의 변'이다.

마음을 다잡은 노 대표는 2005년 3번째 회사인 '테터앤컴퍼니'를 창업한다. 여기서 노 대표는 티스토리, 테터툴즈 등 블로그 서비스를 개발한다. 그는 "당시는 '미니 홈피'일색이던 시장이 검색을 중심으로 재편되던 때였다"며 "검색이 떠오를수록 고급 콘텐츠를 생산해 이를 공개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블로그는 고급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판단은 주효했다. 2008년 9월 테터앤컴퍼니는 국내는 물론 아시아 스타트업(Start-up) 기업 최초로 구글에 인수되는 성과를 거뒀다. 노 대표는 2010년까지 구글에서 일했다.

그에게 창업에 대해 물었다. 할 줄 아는 것이 창업 밖에 없었다는 자칭 창업 전문가지만 노 대표가 생각하는 창업의 동의어는 '사명감'이다.

그는 "정말 무엇인가를 이루거나 혹은 어떤 관념을 바꾸고 싶다는 의지가 충만하지 않다면 그건 창업이 아니라 생업을 잇는 장사"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어렵다는 것이 노 대표의 설명이다. 이어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에 정말 천착하고 이를 실행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의지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다. 바로 동료다. 노 대표에게는 인젠 때부터 16년 동안 모든 창업에 참여한 동지가 있다.

"창업은 한 개인의 사명인 동시에 다른 사람의 먹거리를 책임진다는 또 하나의 사명이다. 이를 지키면 그 창업은 반은 성공한 것"이라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이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권욱기자











●노정석 대표는




△1976년 전북 전주 △전북 과학고, KAIST 경영공학과 △1997년 '인젠' 최고기술책임자(CTO) △2002년 '젠터스' 최고경영자(CEO) △2004년 SKT CI 사업본부 △2005년 테터앤컴퍼니 CEO △2008년 구글코리아 프로덕트 매니저(PM) △2010년 파이브락스(전 아블라컴퍼니) 공동 창업













노하우 전수·물적 지원… 티켓몬스터·파프리카랩 키워




■ 창업 보육사 노대표




노정석 파이브락스 창업자는 엔젤 투자자로 유명하다. 후배 창업자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과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

그가 지금까지 투자한 15개 회사 중에는 현재 상당한 규모로 큰 곳도 다수다. 투자를 받은 업체 가운데 성공적인 스타트업 엑시트(창업한 회사를 키워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것)로 꼽히는 사례도 있다. 노 대표가 '창업 보육사'로 불리는 이유다.

대표적인 소셜커머스로 성장한 '티켓몬스터'가 그 중 하나다. 노 대표는 처음부터 티켓몬스터의 잠재력을 읽어내고 조력자 역할을 맡았다. 티켓몬스터는 창업 1년 만에 세계 2위 소셜커머스 업체인 미국 '리빙소셜'에 인수됐다가 최근 소셜커머스 원조 기업인 '그루폰'에 인수됐다.

또 그가 도운 소셜게임 전문 개발사인 파프리카랩은 일본 소셜미디어 서비스 업체 '그리(Gree)'에, 음성인식 문자전송 애플리케이션(앱) '다이알로이드'는 다음커뮤니케이션에 인수됐다.

이 밖에도 사용자 기반 동영상제작 서비스 업체 '쉐이커미디어', 뷰티 큐레이션 커머스 업체 '미미박스', 헬스케어 부문 세계 1위 앱 개발사인 '눔(NOOM)' 등이 모두 노 대표의 투자를 받았다.

그는 아예 창업자들을 제대로 돕기 위해 법인을 따로 차렸다. 패스트트랙아시아가 그것이다. 신현성 티켓몬스터 대표와 박지웅 전 스톤브릿지캐피탈 수석심사역(현 패스트트랙아시아 대표), 미국 인사이트벤처파트너스의 대니얼 프랜시스 수석심사역 등이 합심해 만들었다.

노 대표는 "(엔젤 투자는) 투자금 회수 차원 보다는 같은 창업자 입장에서 서로 같이 발전하자는 의미가 더 크다"며 "선배들이 좌충우돌하며 경험하고 축적한 노하우를 후배 창업자들에게 전달해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면 가장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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