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 [기자의 눈/7월 21일] 대통령제 개헌 논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치적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우선 그가 대통령과 총리를 겸하려 했다는 데서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으로서 국민통합을 이루지도 못했고 총리로서의 이념을 제대로 실현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그의 허물이 아니다. 현행 헌법이 대통령에게 국가원수, 행정부 수반, 여당의 총수라는 삼위일체식 권한을 동시에 허용하고 있는 게 더 본질적인 문제다. 노 전 대통령 이전의 대통령들은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 기능에 중점을 뒀지만 노 전 대통령은 여당의 총수로서 국정을 주도하는 개혁의 투사로서의 역할에 더 치중했다. 이 때문에 그는 국민통합과 국정안정보다는 잘못된 제도를 타파하고 반대 의견을 돌파하려는 총리로서의 이미지에 더 무게를 실었다. 세계 각국의 정치제도를 보면 국가원수(=국부)로서의 기능과 정파의 수장(=총리)으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일치시키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정파의 이해보다는 국민통합을 우선시해야 하는 대통령과 정파의 이해를 관철하고자 하는 총리의 기능이 대부분 분리돼 있다. 영국과 일본은 대통령이 없는 총리 중심의 내각제이지만 국왕이 있어 국가원수의 기능을 대신하며 국민통합의 최후 보루가 되고 있다. 독일도 내각제이기는 하나 국정을 총괄하는 총리와는 별도로 국가통합의 상징적인 주체로 대통령이 있다. 프랑스는 아예 대통령과 총리를 엄격히 구분한 이원집정부제를 채택, 좌파 총리와 우파 대통령 또는 그 반대 형식의 정권교체를 통해 권력분립과 균형을 꾀하고 있다. 유일하게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만이 국가원수와 총리의 권한이 집중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연방제 국가로서 행정ㆍ교육ㆍ경찰ㆍ조세 심지어 검찰 및 사법권한까지 광범위하게 지방에 분산돼 있는데다 의회의 권위까지 감안한다면 미국 대통령의 권한은 몹시 제한적이다. 앞으로 개헌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나 단순히 대통령 임기의 연장 여부에 초점을 맞춰서는 곤란할 것 같다. 단지 대통령 임기를 한번 더 늘린다고 해서 정치안정과 국민통합이 이뤄지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승자독식(勝者獨食)의 대통령제 임기가 길어질 때 선거에서 패한 정당의 불만과 소외감은 더 커지고 이로 인해 정치 불안과 국민 분열은 더 심해질 수 있다. 차제에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복잡한 다원화된 사회에서 국민통합과 정치안정, 개혁적 이상을 동시에 이뤄낼 수 있는 정치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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