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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기는 진료ㆍ정비수가와 함께 보험료 구조의 왜곡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척결해야 할 대상이다. 더욱이 보험사기는 위법ㆍ탈법행위를 동반하기 때문에 자동차보험 산업의 근간을 좀먹는 암적 존재라 할 수 있다.
자동차보험은 어떤 보험 분야보다 사기발생 비율이 높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많은 보험전문가들은 허술한 교통사고 처리제도와 일반인들의 그릇된 인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본다.
2명(국토교통부ㆍ금융위원회)의 '시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자동차보험의 태생적 한계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컨트롤타워가 없으니 중지를 모으기 어렵고 사기척결을 위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기도 쉽지 않다.
한 손보업계 고위관계자는 "상식적으로 남한테 상해를 입히면 형사적 처벌 대상이 돼야 하는 게 맞지만 자동차사고는 보험에만 가입돼 있으면 공소권 없는 사건으로 처리된다"며 "보험사기는 모방범죄를 양산한다는 점에서 보다 강력한 견제수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 통용되는 자동차보험=자동차보험시장은 '깨진 유리창 이론'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 가운데 하나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건물의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건물관리에 소홀하다는 인상을 풍겨 강력범죄가 늘어난다는 범죄이론이다. 쉽게 말해 사소한 위반이 발생했을 때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결국 더 큰 위법행위로 발전한다는 뜻이다.
자동차보험이 그렇다. 자동차보험에 대한 잘못된 인식(깨진 유리창)을 바로잡지 못하니 자동차보험 사기가 양산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현재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2,579억원으로 전년동기보다 15.3%가 늘었는데 여기에서 자동차보험 사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55.7%(1,436억원)에 달한다.
사기형태별 비중만 봐도 자동차보험 사기가 얼마나 만연돼 있는지 알 수 있다.
자동차보험 사기는 고의로 사고를 유발하는 경성사기(hard fraud)와 사고발생 후 손실을 확대 보고하는 연성사기(soft fraud) 등 두 가지로 나뉜다. 이 중 연성사기 형태가 압도적으로 많다. 교통사고 처리과정에 공권력이 개입하지 않으니 손실이나 부상 정도를 과장하는 것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모방원 동부화재 SIU파트장은 "보험사기 중 경미사고에서 허위ㆍ과다사고 신고로 적발된 경우가 70% 이상일 정도로 자동차보험 사기에 대한 일반인들의 범죄의식이 굉장히 약하다"고 설명했다.
◇컨트롤타워 부재… 줄지 않는 보험사기 요인=컨트롤타워 부재도 보험사기 근절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최근 교통사고의무신고 제도 도입을 둘러싸고 잡음이 일고 있다. 자동차보험의 태생적 한계 탓이다.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과 임의보험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의무보험의 속성이 일반소비자들 머릿속에 '자동차보험=사회보장제도'라는 등식을 심어놓았다.
문제는 보험 부문별로 주관부처가 다르다는 데 있다. 국토부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을 근거로 의무보험을 주관하고 금융위는 임의보험을 챙긴다. 한 상품에 2개 부처가 관여하다 보니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
교통사고의무신고 제도만 해도 국토부는 관련제도를 도입해 교통사고 발생건수도 줄이고 보험사기도 예방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금융위는 법 개정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손보업계는 당연히 국토부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자동차보험을 제외한 전 부문에서 상급 지휘기관인 금융위의 눈치를 보느라 냉가슴을 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적 논의가 나올 가능성은 낮다.
한 손보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자동차보험에 임의보험을 추가해 경쟁을 유도하고 자동차보험 발전을 꾀한다는 입장이지만 대놓고 가격통제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어떤 형태로 발전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의무신고제만 해도 금융위는 소비자 불편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지만 각주를 어떻게 다느냐에 따라 해결방법을 찾을 수도 있는데 결국 의지가 없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교통법규, 보험사기 적발시 처벌 강화해야=전문가들은 자동차보험 사기를 줄이려면 결국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극복하기 위한 사법 원칙이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이듯 교통법규를 위반하거나 보험사기에 연루된 경우 엄정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로벌스탠더드에 비춰볼 때 한국은 보험사기 발생 가능성이 높은 편에 속한다. 당장 전세계에서 교통사고 발생시 경찰 신고 없이 보험금이 지급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오히려 경찰에 신고하면 범칙금과 벌점이 부과되기 때문에 당사자 간 합의를 선호하고 이 과정에서 보험료 누수가 발생한다.
사고통지 기한도 없다. 상법에는 교통사고 사실을 보험사에 '지체 없이' 알리라고 규정돼 있지만 기한이 명시되지 않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사고통지 기간이 늦어질수록 사고조작 가능성은 커진다. 또 견인차나 구급차가 경찰보다 사고현장에 먼저 도착하는 관행 때문에 제대로 된 손실파악도 어렵다.
손보업계 고위관계자는 "보험이 국가기반 산업이어서 정부는 시장에 일정 부분 책임을 떠넘기려 하는데 민간이 할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다"며 "특히 보험사기처럼 명백한 위법행위인 경우 공권력을 가진 정부가 법 개정 등을 통해 포청천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