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 한두 사람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연줄 따지기 좋아하고 그걸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일 거다. 모든 분야에 통하는 말이겠지만 특히 법조계에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다. 법조계만큼 몇몇 특정 학교 및 학과 선후배 관계로 얽혀 있는 곳도 드물기 때문이다.
얼마 전 중견 A로펌의 한 소장변호사를 만났다. 같은 곳에 근무하는 동료 변호사와 함께 나온 그는 얘기 중간 중간에 동료와 기자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주고받았다. “아 그 형, (서울중앙)지법 판사하다 저번 인사 때 인천으로 갔다던데. 학교 다닐 때부터 잘 알아.” “80학번 박 선배는 지금 OO지청 형사부 검사로 있다고 들었어. 한번 연락해봐.” 여느 때 같으면 흘려버릴 대화였지만 대형 법조 비리로 세상이 떠들썩한 시기에 들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이 사람들은 대학 생활의 연장선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법조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판ㆍ검사, 변호사로 딴 길을 가고 있지만 ‘선ㆍ후배’라는 동료 의식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선배, 후배’ ‘형, 동생’으로 부르며 서로 허물없이 지내는 걸 탓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법조 비리의 근원(根源)이 이런 연줄문화 때문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최근 법조 비리에 연루된 모 법관은 자기가 맡은 사건도 아닌데 후배 판사에게 피고인을 잘 봐달라는 취지의 압력성(?) 부탁을 했다고 한다. 또 불과 몇 달 전 같은 서울지검 건물에서 근무했던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선ㆍ후배 검사들을 만나러 이방 저방 휘젓고 다닌다고 한다.
대다수 법조인은 사사로운 인연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는다. 일부 법조인이 물을 흐려놓고 있다는 항변도 이유가 있다. 그러나 법조 비리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연줄, 특히 학연을 이용한 유착 고리가 작동되지 않은 사건이 드문 건 법조계에 ‘형님 좋고, 아우 좋고’식의 끼리끼리문화가 청산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들에게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법 집행을 외치려면, 법조계 내부에 똬리를 틀고 있는 ‘우리는 한 식구’라는 비뚤어진 동료 의식부터 먼저 털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은 법조계에 완전히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