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는 총수출 1,943억달러, 무역수지 흑자 155억달러를 달성했다. 특히 정보기술(IT) 분야는 573억달러를 수출하고 209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며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세계 11위로 성장한 우리나라 경제의 1등 공신은 IT 분야임에 틀림없다.
또 세계 경제성장률이 3.2%인데 비해 세계 IT성장률은 6.5%에 이르고 있으며 세계경제를 주도할 차세대 성장산업 중 IT의 비중은 오는 2010년 78%를 점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를 이끌어갈 원동력 역시 IT 분야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세계적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IT 분야 중에서 우리나라가 기술적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는 부문을 선정해 관련 원천기술 확보 및 신속한 산업화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바로 9대 IT 신성장동력 과제다.
우리나라는 이미 전전자교환기(TDX)ㆍ초고집적반도체(DRAM)ㆍ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등의 기술을 성공적으로 개발해 산업화에 성공한 경험이 있다. IT 불모지에서 신기술을 창출해 상용화시킨 경험과 이미 입증된 뛰어난 연구역량을 활용하면 원천기술과 지적재산권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세계시장 선점으로 직결시키려면 국제표준화의 흐름 속에서 시장환경을 연구개발(R&D) 전략 수립에 반영해야 한다.
나라마다 제각각 정해 사용하던 각종 표준이나 인증절차들이 비관세 장벽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95년 무역에 관한 기술장벽 협정(WTO/TBT)이 체결, 발효됐다. 세계가 함께 쓰는 국제표준을 제정함으로써 표준문제가 국제무역의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러나 해당 분야에 대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국가나 기업에는 국제표준화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어서 실제로는 원천기술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선진국들이 국제표준화 과정을 주도하고 있다. 원천기술은 말 그대로 여러 갈래 상용기술의 본바탕이 되는 기술이어서 후발 IT 국가들이 선진국들이 보유한 원천기술의 그늘을 벗어나기가 힘든 실정이며, 원천기술 사용료를 주는 후발국들과 이를 받는 선진국들의 세계시장 경쟁력은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국제표준화까지 겹쳐 국제표준으로 인정받은 선진기술을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후발국은 막대한 기술료를 부담해야 한다.
정부가 9대 IT 신성장동력 과제를 수행하면서 원천기술의 개발과 국제표준화 활동을 병행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국제표준이 우리나라가 구상하고 개발 중인 기술에 유리하게 정해진다면 이 분야의 원천기술이 곧 세계시장 경쟁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들도 국제표준화 과정에서 자국의 입장을 반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표준화 경쟁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제표준화 활동에서 국내외 전략적 제휴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국제적 영향력이 있는 외국기업과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차세대 IT산업은 제각각 첨단기술을 지닌 다수의 국가와 기업들이 분업적 관계를 통해 형성해가고 있으므로 어느 특정 기업이나 국가가 일방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때문에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기업이나 외국 기구와 유기적 협력관계를 맺는다면 국제표준화 경쟁에서 두터운 지지층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외교적 영향력은 선진국을 뛰어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우선 뛰어난 원천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기술적 우수성을 내세워 세계를 설득시킬 우수한 인력을 육성해 국제표준화 활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그러자면 해당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의 실력과 연륜을 갖춘 연구인력들이 국제표준화 현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여야 하며 이들에게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IT 분야 전문가를 훌륭한 외교관으로 훈련시키는 일은 빠를수록 좋다.
기술표준에는 국경이 없다. 국제표준화의 대세 속에서 국내에서 우리끼리만 사용할 수 있는 신기술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국제표준이 세계시장에서 왜 중요한가를 인식해야만 한다. 또 세계시장에서 우리나라 IT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술뿐만 아니라 표준화에서도 앞서나가야 한다.
차세대 IT산업 세계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핵심 원천기술의 개발, 지적재산권의 확보, 국제표준화 활동을 동시에 그리고 전략적으로 병행해야 한다.
<임주환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