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일로 복잡하다. 이러한 가운데 법에 규정된 6월 임시국회도 열리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서로 대치하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가고 있는데 문제는 꼭 통과되어야 하는 법안들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법안 중 하나가 지금 국회의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하 근퇴법) 개정안이다.
개정 늦을수록 자본시장 위험
우리나라는 노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있다. 우리 사회는 오는 2018년에는 노령인구의 비중이 전체인구의 14%가 넘는 노령화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노령화 사회의 문턱에 서 있는 우리나라에 있어서 노후생활 대책을 확보하는 것은 늘어나는 평균수명에 비춰 볼 때 매우 중요한 국가적 과제다.
선진국의 경우 일찍이 정비된 공적연금ㆍ기업연금ㆍ개인연금의 3층 체계를 통해 노후생활에 대한 충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은퇴 후 필요한 소득은 일할 때 소득의 70% 정도면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은 현재의 제도로 보면 일할 때 소득의 약 40% 정도를 보장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30% 정도의 추가적인 은퇴소득을 어디에선가 확보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퇴직연금제도인 것이다.
퇴직연금의 뼈대인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은 현재 전면 개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법안의 문제점을 보완해 노후보장 측면을 강화하고 퇴직연금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어 법 통과 시에는 퇴직연금 제도에 긍정적이면서도 커다란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근로자는 이직 또는 실직 시에도 퇴직연금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고 자영업자들의 퇴직연금 가입이 가능하게 돼 퇴직연금의 가입 기반이 넓어지게 된다. 근로자들의 퇴직연금 수급권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고 있어 근로자들의 퇴직연금 자산은 더욱 안전하게 보호 받게 된다.
또한 이 법이 통과돼 시행될 경우 퇴직연금 가입자는 더 다양한 형태의 퇴직연금에 가입해 그 이익을 향유할 수 있다. 그밖에 금융기관 등 퇴직연금사업자의 도덕적 해이 가능성을 줄여 퇴직연금 제도가 근로자에게 더욱 많은 이익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조속히 이 개정안이 통과돼야 퇴직연금사업자를 비롯한 여러 이해 당사자들이 이 개정안을 바탕으로 제도를 보급하고 확산시킬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어지러운 정쟁 때문에 이 법안은 상임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개정안의 내용을 기다리면서 개정안 통과 후로 퇴직연금 도입을 늦추는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고 퇴직연금 사업자들도 수백억원대의 투자를 미루고 있어 퇴직연금 제도의 발전은 요원하기만 하다.
특히 기업들은 2011년부터 퇴직보험이나 퇴직신탁 제도에 주어지는 세제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므로 많은 기업들이 올해와 내년에 걸쳐 기존의 26조원에 이르는 퇴직보험이나 퇴직신탁제도에서 퇴직금제도로 가거나 퇴직연금제도로 이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 금액이 퇴직연금으로 전환되느냐에 따라 퇴직연금의 조기 정착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새롭게 개정되는 퇴직연금법안이 조속히 통과돼 2011년 이전에 새로운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지 못한다면 기업 및 근로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26조원의 자산을 퇴직연금으로 돌릴 메리트를 찾기 힘들어 퇴직금의 중간 정산 형태로 소진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퇴직연금이 조기에 자리를 잡으려면 적립금 규모가 40조원 정도는 돼야 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 26조원 규모의 적립금이 퇴직연금으로 전환되지 못한다면 현재 7조원 규모인 퇴직연금의 앞날은 그리 밝지 못하게 된다.
2011년까지는 이제 1년 반 남짓 남아 있다. 개정안의 처리가 늦으면 늦을수록 퇴직보험 및 신탁의 퇴직연금 전환은 늦어져 그만큼 전환 시기가 촉박해지고, 수많은 기업들의 동시 퇴직연금 전환은 자본시장에 한꺼번에 자금을 유입시켜 리스크를 발생시킨다.
적립금, 퇴직연금으로 전환을
한편으로는 개정안 처리가 이뤄지지 않아 이 금액이 중간 정산되고 일시금 형태로 소진될 경우, 퇴직연금제도의 정착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고 근로자의 퇴직 소득은 그만큼 보장 받기 힘들게 된다. 이러한 결과가 발생할 경우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