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대표적 ‘자주파’ 인사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25일 사의를 밝힘에 따라 한미 공조를 강조하는 ‘동맹파’ 진영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특히 북한 핵 사태 이후 자주파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는 반면 외교부ㆍ국방부를 중심으로 한 보수성향의 동맹파가 전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장관은 노무현 정권에서 청와대 386 핵심 참모들과 함께 대표적인 자주파 그룹으로 꼽혀왔다. 자주파의 맏형인 그가 북한 핵실험 사태로 일선에서 물러나게 돼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자주파는 정권 초기부터 자주국방론ㆍ동북아 균형자론 등을 주장하며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강조해왔다. 이들은 북핵 사태 이후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안 적용 문제를 놓고 친미 성향의 동맹파와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맹파는 유엔 결의안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해 국제사회와 공조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자주파는 현재 취하고 있는 대북 제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들이 크게 이견을 보이는 곳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문제다. 이 장관은 그동안 PSI 참여 확대와 관련,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해 남북간 무력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 입장을 취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장관이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PSI에 참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이렇듯 자주파가 급속히 몰락한 데에는 북한 핵 사태 이후 노 대통령의 외교안보 인식 변화를 꼽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이번 사태 직후 외교안보 관계장관 회의에서 자주파 인사들을 질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상 아무런 변화 없이 기존의 외교안보 정책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청와대의 386 핵심 참모들을 중심으로 한 자주파의 집단적 반발 가능성도 제기됐다.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젊은 청와대 참모들이 국제 정세 속에서 외교적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는 대통령에게 집단 항의할 것”이라며 “이 장관의 사의도 이런 상태에서 일할 수 없다는 집단적 항의 표시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