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사설/10월 27일] 메르켈의 도박, 감세

독일 연립정부가 차기 핵심정책에 관한 협상에 돌입한 지 3주 만에 결과를 내놨다. 쉬운 협상은 아니었다. 여러모로 운신의 폭이 좁은 상황인데다 선거 당시의 공약을 시행할 재정도 부족한 탓이다. 때문에 이들의 협상결과는 긴 내용에도 불구하고 요지가 간명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24일(현지시간)"독일은 '성장'을 선택했습니다"라고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향후 240억유로(약 42조6,700억원) 규모의 감세정책을 실시한다는 대목이었다. 경제에 돈이 돌지 않으면 언제고 쓴 맛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비 및 투자를 부추기기 위한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메르켈 총리의 도박으로 볼 수 있다. 경제성장을 추구한다면서도 세수를 줄이겠다는 것은 언젠가 재정적자를 감당하기 위한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현재 독일의 재정적자는 특히 연금ㆍ건강보험 등 사회복지 부문에서 두드러진다. 하지만 이번 협의문에는 재정적자 해소에 대한 대책이 부족하다. 물론 선택의 여지가 좁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단기적으로 재정 충당이 불가피하며 건강보험ㆍ노인복지에 대한 국민 부담도 늘어날 게 뻔하다. 하지만 이제 간신히 경기침체의 밑바닥을 벗어난 상황에서 이는 경제에 무리를 줄 수도 있다. 아직까지 내년 독일의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4% 수준으로 전망돼 비교적 양호한 편이라고는 해도 말이다. 다만 볼프강 쇼이블레 현 내무장관이 차기 재무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독일의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를 덜어주고 있다. 쇼이블레 장관은 재정 운용에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왔으며 전 기민당(CDU) 당수로서 잔뼈가 굵은 11선 정치인이다. 그는 갑작스런 증세 등 인기 없는 정책을 시행하는 데 적임자다. 한편 자민당(FDP)은 노동시장 개혁과 관련해 메르켈 총리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의무적인 군복무 기간을 현행 9개월에서 6개월로 줄이는 데 합의를 이끌어냈다. 징병제를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직업군인들로 군대를 채우겠다는 의도다. 메르켈 총리가 지난달 재선에 성공한 데는 그의 '예측 가능한 경제정책' 덕이 컸다. 경제의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여왔다는 이야기다. 메르켈 총리는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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