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 견제" 비리 제보 기승

"내수부진으로 업종불문 시장쟁탈전 과열"
시장 투명성 촉진 긍정적 기능 있지만
이미지 흠집내기 '묻지마식' 사례도 많아
"소모적 비방전 대신 기술개발 힘써야" 지적


얼마 전 국내 시멘트 생산업체인 S사의 지방 공장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했다. ‘산업폐기물을 불법 매립한 흔적이 있다’는 비리 첩보가 검찰에 접수됐기 때문이다. S사는 즉시 비리첩보 근원지 색출작업에 나섰지만 속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S사는 최근 시멘트 업계의 경영난이 심화되면서 업체간 과열경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일어난 일로 파악하고 비리 제보자로 의심되는 리스트에 경쟁업체도 빼놓지 않았다. 내수부진으로 기업간 시장 쟁탈전이 가열되면서 사법당국에 경쟁업체의 비리를 제보하는 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수부진으로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업체들이 경쟁업체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비리제보를 양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도 내부 또는 시민단체로부터 기업 관련 비리제보가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동종업계의 경쟁사가 제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25일 검찰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S사 역시 내부적으로는 이번 비리제보가 환경단체나 내부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S사의 한 관계자는 “우리 때문에 일감이 줄어드는 (경쟁) 업체들이 제보했을 수 있다”며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현재 국내 시멘트 업계는 내수건설 경기 침체와 중국산 등의 범람으로 최악의 경영위기를 맞고 있다. 비리제보는 선발업체가 후발업체를 견제하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최근에는 대기업 C사가 밀가루에 이어 세탁ㆍ주방세제 가격담합 행위에 가담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으나 두 차례 모두 다른 업체들과 달리 검찰 고발에서 제외돼 경쟁업체들의 의심을 사고 있다. 공정위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타 업체들은 “C사가 담합행위를 신고해 ‘자진신고자 감면제(리니언시)’를 적용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밀가루나 주방세제 시장 역시 경쟁업체들의 난립으로 포화상태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업계 1위인 C사가 후발업체를 견제하기 위해 담합행위를 제보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얼마 전 수입업체인 대기업 모계열사 역시 경쟁업체 제보로 탈세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는 바람에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했다. 지난 9월에는 급식용 보일러를 납품하는 중소업체인 H사도 경쟁업체 등의 로비의혹 제기로 곤혹을 치렀다. 물론 이 같은 비리제보는 시장을 투명하게 만드는 촉진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검찰 관계자는 “기업들의 비리를 바로잡는 것은 시장을 투명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경기회복이 더뎌지면서 한정된 내수시장을 놓고 업체간 쟁탈전이 심화되는 가운데 비리제보가 만연하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당장의 내수불황 타개를 위해 기술이나 신제품 개발은 뒷전으로 하고 경쟁업체를 흠집내며 시장을 빼앗아오기 바쁜 차원이라면 장기적으로 기업들의 경쟁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경상 대한상의 기업정책팀장은 “경제가 어려워지고 기업하기 힘든 상황이 반영되고 있는 것 같다”며 “기업 상호간의 소모적인 비방과 비난은 결국 공생이 아닌 공멸로 치닫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팀장은 특히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 등과의 글로벌 경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경쟁업체의 비리제보는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검찰 관계자는 “상당 수의 비리제보는 공식 수사가 시작되기 전 내사 단계에서 무혐의 처리된다”고 말해 ‘묻지마식 비리제보’로 경쟁업체의 발목을 잡으려는 행태가 만연해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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