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가장 위험한 남자'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첫 과제인 구제금융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위해 투트랙 전략을 꺼내 들었다. 국내 여론을 의식해 겉으로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다른 유럽 국가와의 협상 국면에서는 유연한 자세를 보이며 타협점을 마련하는 데 부심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1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취임 후 처음 참석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구제프로그램은 잊으라"며 "트로이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이후 EU와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이른바 '트로이카' 대외채권단으로부터 2,400억유로(약 301조4,800억원)의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지금껏 그리스가 이행해온 프로그램, 즉 긴축정책을 더 이상 유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한 셈이다. 앞서 치프라스 총리는 전날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서 공표 직전까지 갔던 공동선언문에 대해서도 '현 구제 프로그램의 연장'이라는 문구가 삽입됐다는 이유로 합의 취소를 지시했다.
그리스는 트로이카 채무의 만기가 돌아오는 이달 말까지 구제금융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가장 중요한 돈줄인 유럽으로부터의 자금 수혈이 불가능해져 당장 다음달 부채 해결마저 힘에 부친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치프라스 총리가 최근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강경 제스처는 더 이상의 긴축을 원치 않는 국내 여론을 의식한 행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실제 협상 테이블에서 치프라스 총리는 지금까지의 요구에서 물러날 용의가 있음을 내비치며 타협의 실마리를 찾는 모양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복수의 핵심당국자 말을 인용해 "치프라스 총리는 현 프로그램하에서 요구되는 예산흑자 규모(GDP의 4%)를 일정 수준 낮춰준다면 긴축예산을 유지할 준비가 돼 있다"며 "국영기업 민영화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의 불가 입장을) 조정할 생각이 있다"고 보도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정상회의 참석 전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과 만나 13일부터 트로이카와의 기술적 대화에 들어가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이 같은 치프라스 총리의 양면전술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는 모양새다. 관련 문제를 놓고 그리스와 대척점에 놓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날 치프라스 총리와의 첫 대면을 "매우 우호적(very friendly)"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16일 유로그룹 회의 때 그리스와 여타 유럽 국가가 극적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실낱 같은 희망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반영되면서 그리스 증시도 이날 6.7% 급등했다.
다만 블룸 유로그룹 의장은 치프라스 총리와 이룬 합의에 대한 긍정적 해석을 경계하면서 "(최종 타결까지) 매우 어려울 것이며 우리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