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증권시장을 필두로 금융시장이 안정세를 되찾고 있지만 원ㆍ달러 환율은 아직도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외화 유동성이 개선되고 시장상황이 호전됐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단기외채 비율이 높고 증시에서 외국인투자가의 단기차익 실현 가능성이 상존하는 등 낙관은 이르다는 시각이 많다.
장외파생상품 체계적 관리필요
단기적으로는 원화 약세가 수출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이러한 점이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불안한 우리 경제의 연착륙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가 장기화될 경우 긍정적 효과만을 기대할 수 없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 199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번 금융위기는 전세계적인 소비 위축을 가져오고 있기 때문에 원화의 약세가 과거와 같이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제 현실을 감안하면 정부ㆍ기업을 비롯해 개인들까지도 원ㆍ달러 환율에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환율이 과도하게 하락하거나 단기간에 급변할 경우 상대적으로 큰 손실을 입게 된다. 특히 높은 환율 변동성은 기업 등 실제 외환 수요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큰 위험으로 작용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8년도 우리나라 원화의 일일 환율변동성은 0.99%로 호주를 제외한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높았다. 환율의 일중 변동폭도 18.3원으로 2007년 3.0원에 비해 큰 폭으로 확대됐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효율적인 환리스크 관리 필요성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높다. 그러나 지난해 말 한국거래소 상장 제조업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34.7%는 ‘환헤지를 위한 파생상품 투자시 별도의 전략이 없다’, 25.3%는 ‘전문지식 부족이 파생상품 활용에 가장 큰 장애가 된다’고 답해 체계적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미루어보건대 지난해 주요 언론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수출 관련기업들의 키코(KIKO) 등 장외통화옵션거래 손실 관련 소식이 우연이나 사고라고만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편 이번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자산으로 한 장외파생상품을 미국 투자은행들이 무분별하게 발행,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데 있는 것으로 파악됨에 따라 선진국들은 장외파생상품 관리방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장외파생상품의 위험성이 부각되자 최근 미국에서 열린 국제 파생상품 콘퍼런스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장내파생상품으로 헤지 수요가 이동하고 있다는 해외 주요 거래소들의 전언이 이어졌다. 거래소들은 이러한 장외시장으로부터의 수요 이전 충족뿐만 아니라 장외파생상품에 대한 결제 안전장치제공이라는 정책적 기능을 수행하면서 수익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장내ㆍ장외시장 간 상호보완기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키코사태 이후 장외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위해 공신력 있는 중앙청산기관이 결제 이행을 보증할 필요성이 거론되는 등 장외파생상품 시장을 회생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거래소도 미국달러선물의 증거금 및 거래단위를 5분의1로 축소하고 만기ㆍ결제방식을 거래 당사자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등 위축된 장외시장을 대체할 헤지수단 마련을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올해 들어 환율 변동성 증대 등으로 미국달러선물 거래량이 눈에 띄게 늘고 개인 참가자의 비중도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코스피200 선물ㆍ옵션의 경우와 같이 파생상품에 대한 개인 참여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미국 내 유학생 숫자가 세계 1위를 점하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유학자금 송금 등 개인의 다양한 달러화 헤지 수요가 적지않다는 점에서 개인의 참여비중 증가는 투기거래를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장내거래를 필요로 하는 투자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장내·장외시장 상호 보완 조치를
4월23일은 환율변동위험을 헤지할 수 있는 최초의 장내파생상품인 원ㆍ달러선물이 상장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유용한 장내 환리스크 헤지수단 제공이라는 취지로 탄생, 10년의 성숙과정을 거친 미국달러선물이 기업과 개인에게 안전한 헤지수단을 제공함으로써 금융위기 조기 탈출에 일조하기 바란다.
아울러 동북아 금융허브를 국가발전전략의 한 축으로 추진하는 우리로서는 보다 다양한 파생상품을 개발하고 상장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부 등 관련 당사자들도 파생상품에 대한 유용성, 효과적인 활용방안 등에 대한 계도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할 것이다. 위험하다고 피해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국가ㆍ기업ㆍ가계를 경영하면서 경제현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 못지않게 적절한 대처수단을 강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달러선물 탄생 열돌을 맞으면서 파생상품에 대한 각 경제주체들의 적극적 인식전환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