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인증실태 긴급진단] 수출중기 '규격집 찾아 삼만리'

국제통화기금(IMF)한파 이후 불안해진 내수시장에서 탈피, 해외수출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의외의 복병을 만나 고전하고 있다. 해외바이어들이 각종 인증마크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어디에도 제대로 된 안내자가 없어 중소기업수출전선에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외국바이어들이 요구하는 인증은 CE(기계안전, 압력용기, 건설자재, 전기기구, 의료기기 등에 대해 의무화된 유럽공동체 인증)와 UL(미국 소비자제품안전법에 근거한 승인규격) 등 각 국가별로 요구하는 100여종에 달한다. 그동안에는 바이어들의 요구가 까다롭지 않고 국가인증을 획득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유럽과 미국을 제외한 지역으로 수출이 편중돼 이의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별 부담없이 수출해왔던 제3세계 국가에서까지 CE마크나 UL마크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물론 수출을 하려면 이들 인증마크를 받으면 된다. 문제는 그게 간단치가 않은데 있다. 가정용 전자혈압계를 생산, 유럽쪽에 수출하고 있는 S사. 이 회사는 수년전 바이어가 요구하는 CE마크를 받기 위해 국내 컨설팅업체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컨설팅업체에서는 차일피일 시간만 끌었고 수수료만 수천만원이 넘는돈을 요구했다. 다급한 마음에 다시 접촉한 곳이 독일의 인증기관인 TUV한국지사. S사는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침내 CE마크를 받는데 성공했으나 중소기업으로서는 부담스러운 1억원과 1년여의 시간을 소비했다. 이 회사의 실무담당자는 『중소기업치고는 비교적 먼저 CE마크를 받은 편이어서 그런지 누구에게도 속시원한 안내를 받을 수 없었다』며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컨설팅업체도 별 도움이 돼지 못했다』고 말했다. 계측기기를 생산, 수출을 모색하고 있는 T사 K사장. 그도 처음 컨설팅업체를 찾았다가 컨설팅업체도 별 뾰족한 관련지식이 없이 규격집에 의존한다는 것을 알고 직접 규격을 획득하기로 마음먹었다. 컨설팅사를 이용할 경우 수천만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 들어가는데다 어차피 시간이 걸리기는 마찬가지라는 판단때문. 처음에는 어려워만 보였던 해외인증마크가 사실은 정해진 규격에 따라 만들기만 하면 누구나 쉽게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K사장은 규격집을 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리저리 헤매던 K사장은 국내의 유일하다시피한 규격집 배포기관인 표준협회를 마지막으로 찾은 이후 분통을 터뜨렸다. 국내 정부기관 어디에도 K사장이 원하는 규격집은 없었던 것. K사장은 결국 영국의 인증기관인 BSI(BRITISH STANDARD INSTITUTION)본사와 직접 접촉한 후 아예 멤버로 가입하고 말았다. 『추측컨데 국내에는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규격집 절반도 보유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청에서 해외인증을 추진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소요비용의 절반가량을 보조해주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이는 「언발에 오줌누기 격」입니다』 K사장의 설명은 이렇다. 해외규격만 확보하고 있으면 이를 토대로 설계에서 생산까지 하면 별다른 어려움없이 인증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완제품 생산 후 인증을 받으려다보니 설계부터 다시 해야하는 경우가 생겨 시간을 최소 6개월이상 소요하는 경우가 다반사로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정맹호기자MHJEONG@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