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ㆍ달러 환율이 급락한 지난 9일 오전 크레디트스위스증권과 모건스탠리·맥쿼리 등 외국계 증권사 창구에서는 삼성전자(005930)와 현대차(005380)의 매물이 쏟아졌다. 3월27일부터 외국인 '바이(Buy) 코리아' 행진의 중심에 섰던 종목이 삼성전자와 현대차였던 만큼 외국인의 갑작스러운 변심에 시장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보통 원화가 강세를 나타내면 국제 가격 경쟁력이 줄어드는 정보기술(IT)과 자동차 등 수출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된다. 환율 하락세는 3월21일 1,080원30전에서부터 이미 시작됐고 원화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시장에 퍼져 있는 상황. 그렇다면 외국인이 급작스럽게 돌변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1,050원선이 무너진 것이 심리적으로 크게 작용하면서 외국인이 수출주를 급격히 내던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의 식성이 바뀌고 있다. 그동안 국내 주식 시장 매수금액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전기전자, 운수장비 업종을 줄이는 반면 철강과 음식료·유틸리티·운수창고 업종을 사들이고 있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날 삼성전자를 549억원어치 사들인 것을 포함해 전기전자 업종에서 894억원 매수우위를 기록했다. 전기전자업종의 외국인 매수 규모는 전날보다는 늘었지만 지난 3일 2,100억원과 비교하면 크게 준 수치다.
외국인은 또 이날 현대차를 264억원어치 내다 팔며 최근 3거래일째 매도세를 이어갔고 현대모비스(012330)도 84억원의 매도우위를 나타냈다.
반면 지난 7일부터 매수세로 전환한 철강금속 업종은 이날도 201억원의 매수우위를 보였고 음식료 업종도 74억원어치를 순매수하며 이틀째 순매수 행보를 이어갔다.
외국인의 관심 업종이 변하고 있는 이유는 환율 하락 때문으로 해석된다. 특히 전날 환율 하락폭이 컸던 것이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바꿨다는 해석이 나온다.
노근환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전날 환율이 10원 넘게 급락하면서 정부와 통화당국이 1,050원선에서 적극적인 환율 방어에 나설 것이라는 심리가 한번에 깨졌다"며 "외국인이 삼성전자에 대해 순매도로 돌아섰고 현대차를 내던진 것도 환율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예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환율 하락폭이 컸던 만큼 일부 차익실현 매물이 나왔다는 해석도 나온다.
은성민 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그동안 외국인의 매수세에 힘입어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주가도 꾸준히 상승한 만큼 환율이 단기적으로 크게 떨어지면서 환차익 실현과 함께 수익률을 한 번 확정하고 가자는 심리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외국인의 국내 시장에 대한 관심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날 중국의 부진한 수출지표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2,898억원을 쓸어담았다. 3월26일부터 12거래일째 매수 행보다.
최광혁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환율 급락으로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이 대거 국내 증시에서 빠져나가고 코스피지수가 하락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가 존재하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최근 외국인의 총 매수 규모가 9조원 수준으로 대규모 매도를 우려할 만큼 크지 않은데다 2004년과 2008년의 원화 강세와 유사하게 무역수지 흑자와 달러 약세, 중국 경기 회복 기대감이라는 대내외 환경이 국내 증시 매력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외국인이 전기전자와 운송장비 업종을 내던지고 사들이는 음식료와 철강ㆍ금속, 전기가스업종은 수급적으로 상승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특히 원자재의 수입 비중이 크고 국내 판매 비중이 높아 원화 강세의 수혜가 집중되는 음식료와 전기가스 업종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근환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아무래도 원재료를 수입해 생산된 제품을 국내 시장에서 판매하는 음식료 업종과 한국전력 등 전기가스 업종이 환율 강세에 따른 실적 개선이 가장 클 것으로 기대된다"며 "실적이나 외국인 수급 측면에서 이들 업종에 대한 관심이 유효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