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 구조조정의 본게임이 시작됐다. '채권단 공동관리'인 자율협약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쟁점이 산적해 있다. 동부패키지(동부제철 인천공장+동부발전 당진) 매각이 수포로 돌아간 가운데 동부제철은 당장 다음달 7일 만기인 회사채 700억원을 막기도 힘들고 운영자금도 바닥났다.
채권단은 이에 따라 급한 불을 끄기 위해 1,000억원 이상을 '브리지론' 형태로 지원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보다 강력한 구조조정 방안과 담보 요구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김준기 동부 회장의 경영권 포기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산은 '700억+알파' 자금 지원 나설 듯=동부제철은 회사채 700억원 뿐 아니라 운영자금 기근에도 허덕이고 있다. 극적으로 동부발전 당진을 이달 중 매각하더라도 돈이 들어오는 데 시간이 걸리고 대부분 동부건설로 들어간다. 결국 자율협약이 추진될 경우 '응급자금', 즉 브리지론이 필요하다. '700억원+알파'가 필요하다. 당장 오는 8월에도 4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동부는 앞서 지난 4월 김 회장의 서울 한남동 자택과 동부화재 지분(7%)을 담보로 산은으로부터 1,260억원의 자금을 수혈 받았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실사기간 연명할 수는 있게 해야 한다"며 "회사채 만기 지원을 포함해 1,000억~2,000억원 규모의 자금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지연 땐 경영권 포기각서 받을 수도=문제는 추가지원 대가다. 김 회장의 한남동 자택과 동부화재 지분까지 담보로 잡혀 있는 만큼 동부가 내놓을 담보여력은 거의 없다. 채권단이 요구하는 김 회장의 장남 김남호 부장의 화재 지분에는 동부의 사수 의지가 강하다. 김 회장 사재를 통한 동부제철 유상증자 방식도 입장이 첨예하다. 갈등구도가 해소되지 않을 경우 채권단이 결국 김 회장의 제철 경영권에 대해 '포기각서'를 받는 수순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물론 당장은 아니다. 산은은 "경영권을 뺏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김 회장이 해야 할 일도 분명 있다. 하지만 지난해 STX 자율협약 과정에서도 채권단은 강덕수 회장으로부터 지분처분 위임권을 받았고 결국 경영권을 박탈했다. 채권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당장 경영권을 박탈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구조조정의 속도가 더디고 유동성이 급격하게 나빠질 경우 상황은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남 화재 지분, 추가 구조조정 여부가 변수=동부가 제철의 경영권을 지킬 생각이라면 내놓을 수 있는 또 다른 담보는 김 회장의 장남 김 부장의 화재 지분뿐이다. 담보여력이 2,500억원 규모로 크지 않지만 채권단은 오너의 진정성을 확인한다는 차원에서 가치를 높게 본다. 하지만 동부 측은 금융계열사 경영권만은 지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일각에서 동부가 사실상 비금융계열사를 포기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가 건설·증권·생명 등 다른 계열사로까지 줄줄이 전이될 경우 이 지분을 끝까지 지키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다. 류희경 산업은행 수석 부행장은 "김 부장이 특수관계인이기 때문에 결국 (담보를) 해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동부건설 단기차입금 6000억 넘어 가장 위험=채권단은 일단 제철만을 자율협약 대상으로 삼았지만 금융권에서는 건설 등 다른 계열사도 조만간 채권단 관리체제로 전환될 것으로 본다. 시중은행 한 여신 부행장은 "제철 자율협약에 따라 건설도 은행권 자금조달이 어려워졌고 2금융권 등에서 상환 요구가 본격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은 단기차입금만 6,000억원이 넘고 2~3개월에 한번씩 상환기일이 도래한다. 건설이 채권단 관리체제로 전환될 경우 자율협약보다는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가능성이 높다. 건설업의 특성상 2금융권과 상거래 채권 등이 많아 채권단 전체의 동의를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산은의 한 관계자는 "동부발전당진 매각에 따른 자금이 동부건설로 유입되기 때문에 속단은 이르다"고 말했다.
◇금융계열사 리스크는 크지 않아… 생명이 변수=현재로서는 금융계열사들로 위험이 전이될 가능성은 낮다. 금융계열사를 지배하는 동부화재의 비금융계열사 익스포저는 동부제철 지분 4.99%, 동부건설 신주인수권부사채(BW) 127억원, 동부하이텍 신디케이트론 382억원 등 605억원 등이다. 이들 비금융계열사들이 모두 법정관리를 밟는다 해도 피해규모가 연간 순이익의 15.4%에 그친다. 동부생명 역시 지급여력비율(RBC)이 216%로 금감원 권고기준(150%)을 웃돈다. 하지만 화재와 달리 생명은 고객이탈 우려가 크고 증권 역시 영업에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리스크가 급속하게 금융사로 확대될 개연성을 열어놓고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