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 지난 8일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에 위치한 탈북민 취업지원센터에서‘탈북대학생 실전취업스킬과정’참가 학생들이 홍기찬 컨설턴트의 직무적성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은 함부로 찍으시면 안됩니다.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학생들한테는 민감한 문제거든요. 얼굴이 알려지면 가족들이 위험해 질 수 있어서…”
강의실에 쳐진 블라인드 너머로 강의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의 사진을 찍으려다 주의를 받은 뒤에야 조금은 특별한 이들의 신분에 대해 실감이 갔다. 얼핏 취업스터디를 하고 있는 평범한‘취준생(취업준비생)’처럼 보이는 이들은 ‘탈북대학생 실전 취업스킬 과정’에 참가한 탈북대학생들. 어린 나이에 죽을 고비를 넘기며 탈북했다는 남다른 이력을 가지고 있지만 여느 대학생들처럼 대기업 공채 합격을 노리는 ‘예비신입사원’들이다.
‘탈북대학생 실전 취업스킬 과정’은 함께하는재단 탈북민취업지원센터에서 탈북대학생들의 취업경쟁력제고와 취업성공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8월 2일부터 23일까지 총 3주 동안 15명의 탈북대학생들은 전문 컨설턴트 10여명의 지도아래 기업분석부터 지원서 작성스킬, 면접전략 및 비즈니스 매너까지 취업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운다. 수료 후에는 취업목표에 따른 개인별 취업코칭 프로그램까지 계획 돼 있다.
이들 15명은 대부분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한양대, 성균관대 등 국내 상위권 대학에 재학중인 ‘인재’들로 정치외교학부터 컴퓨터공학, 간호학까지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학생들로 이루어져 있다. 20대부터 30대 중반의 늦깎이 대학생까지 연일 폭염이 이어지는 날씨에도 여름방학 한 달을 모조리 반납하고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에 위치한 ‘탈북민 취업지원센터’에서 취업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탈북민취업지원센터의 최경일 센터장은 “전국에 약 1,000여명의 탈북대학생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출신지나 면접스킬 부족으로 인해 대기업 취업에 실패한다”며 “탈북대학생들에게 실전 면접에서 쓸 수 있는 취업스킬을 교육시켜 취업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취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이번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했다. 탈북대학생들의 취업 현황에 대해선 “탈북대학생이 대기업 취업에 성공하면 뉴스에 나오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2012 북한이탈주민 실태조사에 따르면 20대 이하 연령층의 실업률은 4.7%로 같은 기간 남한 전체 청년실업률인 7.5%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단순노무 종사자 27.1%, 서비스 종사자가 21.7%로 총 48.8%의 탈북 청년층이 일용직, 임시직 등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해 8월 통계청에서 조사한 일반인 15세~29세의 비정규직 비율인 33.7%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이처럼 20대 탈북자들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것은 탈북대학생들은 취업에 실패하면 곧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2012년 탈북민실태조사에 따르면 20대 새터민의 38.3%는 상류, 중상류, 중류, 중하류, 하류,총 5개의 구간 중 최하위인 하류층에 속하고 36.7%는 그 바로 위인 중하류층에 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대 탈북자들 중 75%는 평균이하의 생활수준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최 센터장은 대기업들이 탈북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공헌활동에 좀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탈북대학생들은 취업이 안 되면 대리기사나 단순노무처럼 대학을 굳이 안나와도 갈 수 있는 직장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기업에서 새터민이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이 사회에 잘 정착해 건전한 시민이 되도록 돕는 것이 통일준비에 효과적인 투자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탈북대학생이 취업을 할 때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뭘까. 강좌에 참여한 탈북대학생들은 하나같이 가장 힘든 점으로 ‘어학능력’을 꼽았다. 한 학생은“탈북 후 중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중국어는 잘 하는 편이다. 한중 관계에도 관심이 많아 무역 회사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넘어야 되는 영어점수를 못 받았다. 혼자서는 못할 것 같아서 학원에 다니려는데 근로장학생이 안되서 장학금을 알아봐야 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탈북민지원센터에서 근무하기 전에 국내 대기업의 인사팀장으로 근무했던 최 센터장 역시 “중국어를 잘 해도 영어를 못하면 경쟁력이 없다. 기업은 둘 다 잘하는 사람을 뽑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탈북대학생들은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영어성적도 못받는 경우가 많아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북한출신이라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컴퓨터공학을 공부한 한 참가자는 “한 대기업 면접에 갔는데 면접관 질문이 ‘남한에 와서 가장 힘든게 뭐였냐’는 거였어요”라고 운을 뗀 뒤 “탈북자라는 것을 면접장 안에서 공개하니까 당황스럽기도 했고 남한학생이라면 받지 않아도 될 질문을 받으니까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며 울분을 토했다.
그러나 탈북대학생들이 마냥 불리한 조건을 가진 것 만은 아니다. 이날 ‘직무적성’을 주제로 강의를 한 취업강의 전문업체 윈스펙의 홍기찬 컨설턴트는 “일반 대학에서도 취업 컨설팅 강의를 많이 하는데 탈북대학생이라고 해서 특이한 점은 전혀 없었다”며 “오히려 탈북과정에서의 고난을 극복해 낸 사례를 예로 들면서 향후에 어떤 힘든 일이 와도 버텨낼 수 있다는 식으로 어필하면 큰 강점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 센터장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탈북대학생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예비대학과정, 대학생활과정, 취업준비과정 3개의 프로그램을 통해 대입부터 취업까지 이어지는 생애진로프로그램‘삶이 변화되는 人-Turnship’이 그것이다. 그는“일회성으로 탈북대학생들에게 인턴십 기회를 주는 기업은 있지만 정기적으로 하는 곳은 없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를 위해 그는 아예 ‘탈북대학생 실전취업스킬과정’과 기업 인턴십 채용을 연계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단발성 탈북자 특별전형이 아니라 ‘탈북대학생 실전취업스킬과정’같은 취업프로그램 참가자 중에서 기업이 바로 채용 하는 방식이다. 최 센터장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역량들을 미리 교육시키면 기업 입장에서 일도 덜게 되고, 회사에 필요한 직무능력을 사전에 교육받아서 입사하면 서로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청년실업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 지고 있는 요즘, 이 같은 채용방식이 탈북자들에 대한 특혜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 그러나 “불쌍한 사람 뽑아주는게 아니라 인재들의 진단과 평가, 교육을 입사 전에 미리 함으로써 기업에 필요한 인재로 만들겠다는 것”이라는 그의 포부에서 이같은 우려를 말끔히 씻을 수 있었다.
/글ㆍ사진=김동진 기자 dj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