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국민이 방사능 측정하는 나라

지난 2011년 3월 일본 대지진의 충격으로 바닷가에 위치한 후쿠시마 대형 원전이 녹아내렸다. 일부 일본 전력 직원들이 목숨을 걸고 사고 원전으로 들어갔지만 인력으로 막을 수 없는 대재앙이었다. 일본 정부는 최선을 다해 사고를 수습하겠다고 수십번 밝혔으나 대책은 항상 두루뭉술했다. 체르노빌 사태 후유증을 잘 알고 있는데다 일본과 바다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공포감은 매우 컸다. 당시 우리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후쿠시마산 오이를 직접 시식하기도 했으나 국민들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런 막연한 불안감 속에 2년 반을 보낸 후 우리 국민들은 최근 다시 한번 배신감과 공포를 느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가 계속 바다로 유출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곧바로 수산물 소비 급감으로 나타났다. 이달 들어 일본과 가까운 동해나 남해 지역에서 조업되는 갈치ㆍ고등어ㆍ명태 등의 수산물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줄었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 수산물 소비가 크게 줄자 대형마트에는 급기야 방사능 측정기가 등장했다. 지난 29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수산물 코너에서는 직원이 직접 수산물 방사능을 측정하며 안전성을 입증했다. 방사능 측정 장비 가격은 100만~400만원대. 가뜩이나 불황에다 의무휴업으로 매출이 부진한 대형마트들은 장비를 추가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방사능 측정기는 대형마트뿐 아니라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도 등장했고 한살림ㆍ두레생협 등 친환경 먹거리 공동체들 역시 장비를 구입해 사용 중이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들이 민간업체 검사 결과를 믿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더 기가 막힌 건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를 개인이 직접 구입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연구소나 산업시설 등에서 사용되는 전문 장비가 일반 소비자들이 인터넷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흔한'상품이 돼버렸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국민들의 불안감을 'SNS 괴담'탓으로 돌릴 뿐이다. 국민들이 정부 대응책을 귀담아 듣지도, 믿지도 않는다는 식이다. 백번 양보해 정부 말대로 국민들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치자. 그렇다면 신뢰 부재는 누구 탓인가. '부족한'국민들이 모두 방사능 측정기를 상비하는 그날까지 '부족함'을 그저 내버려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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