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노련하고 뻔뻔한 북한

"저희가 핵개발에 나선 것은 미국 때문입니다."

최명남 북한 외무성 국제기구국 부국장은 아시아지역포럼(ARF) 외교 장관 회의가 열린 브루나이에서 갑작스레 몰려든 취재진 앞에 자신들의 핵무장이 미국 때문임을 강조하며 핵무장의 정당성을 재차 역설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인 셈이다.

미국과 지난해 맺은 2ㆍ29합의를 북한이 깨뜨린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그것을 깨뜨린 적이 없으며 그 또한 모두 책임이 미국에 있다"며 "세계에서 누가 제일 먼저 핵무기를 만들었고 핵을 사용했는지를 생각해보라"고 반문했다. 6자회담 당사국들을 중심으로 가해지던 대북 압박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모양새다.

이로써 북한이 ARF에서 전향적 입장을 밝힐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는 무너졌다. 또 이번에도 미디어의 관심이 쏠리도록 하는 등 북한이 생각만큼 녹록지 않음을 보여줬다.

북한 측은 지난달 30일 브루나이에 도착한 후부터 기자들과 접촉을 피하며 자신들의 의중을 숨겨왔다. 실제 북한 대표단 단장인 박의춘 북한 외무상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박 외무상은 브루나이에 도착한 당일 저녁은 룸서비스로 대신했으며 다음날 오전 브루나이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예정돼 있던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만남도 갑작스레 엠파이어호텔로 바꾸는 등 취재진을 피했다. 오히려 북한 관련 이슈에 대한 궁금증은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해결하도록 해 중국 뒤에 숨는 모습을 연출하며 '북한은 중국의 2중대'라는 얘기가 회담장에 나돌았다.

북한은 하지만 이날 이전과 같은 입장을 재차 강조하며 자신들의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강조했으며 100여명의 취재진이 몰려들도록 만드는 등 ARF의 중심에 서는 모습을 연출했다. 같은 얘기를 반복했지만 언론은 어느 때보다 주목했다.

북한은 ARF에서 갑작스런 입장 표명으로 취재진의 주목을 받는 목표는 달성한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입만 열면 강조하는 '한반도 평화'는 더욱 멀어지게 됐다. 무엇보다 북한은 한반도 위기의 주범이 누구인지 면밀한 자기성찰을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 또한 '꽃제비'들이 떠나는 북한의 내부 사정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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