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수영구 센텀시티 끝자락에 위치한 C아파트. 지난 4월부터 입주가 시작됐지만 발코니에 새시가 설치된 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단지 앞 부동산중개소 유리창에도 ‘45평 로열층 마이너스 1,000만원’ 등 분양가보다도 낮은 매물 정보가 즐비하다. 인근 나라공인중개사의 이귀환 사장은 “입주율이 30%도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동안 들어간 계약금과 중도금 이자 부담 등을 합쳐 아파트를 분양받는 데 들어간 총 비용보다도 2,500만여원을 손해보면서도 팔려고 내놓은 매물도 있다”고 전했다. ‘지방 부동산 경기 고사(枯死) 직전’이라는 상황을 어느 정도 감안했지만 현장에서 느껴지는 체감경기는 더 나빴다. 6월 기준으로 지방 미분양 물량이 5만5,000가구로 최근 7년이래 최악이라는 등의 수치만으로 부산ㆍ대구 등 지방 주요 도시의 건설경기 상황을 그대로 전달해내기에는 역부족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6월 말 6개 건설사들이 동시분양에 들어갔지만 평균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분양률로 참여업체 부도설 등까지 나돌고 있는 부산 정관 신도시의 현지 사정은 ‘막막하다’는 말밖에 더 이상 설명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게 했다. “메이저 브랜드 아파트를 제외하면 분양률이 한자릿수라고 보면 된다”는 게 현지의 한 부동산중개소 사장의 귀띔이다. 해운대 신도시 롯데4차 인근에 들어선 정관 신도시 동시분양 업체들의 모델하우스 외벽은 ‘중도금 무이자 대출’ 등 청약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문구로 가득하지만 정작 모델하우스내 상담 데스크에는 분양사 직원들이 모여 잡담만 나눌 뿐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부산 지역 분양 대행사인 지우리서치의 최은석 차장은 “내년까지 부산내 입주 예정 물량만 4만여가구”라며 “기존 주택이 팔리지 않아 입주가 안되고 이 때문에 분양률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방의 건설경기 상황은 “미분양 특급열차가 부산과 대구를 찍고 이제 막 대전을 지나 수도권으로 향하고 있다”는 한 건설업체 관계자의 말처럼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대구의 강남으로 통하는 수성구 황금동의 한 대규모 신규 아파트단지. 4,700여가구로 한강 이남에서는 최대 규모의 재건축단지로 불리며 주목받았던 곳이다. 단지 안으로 들어서니 입주를 축하하는 플래카드만 나부낄 뿐 입주대행사 직원들 외에는 지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했다. 7월 말부터 입주가 시작됐지만 입주율이 15%도 미치지 못한다는 게 인근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3,500가구 이상이 텅 비어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대구에서는 분양을 계획했던 업체들이 분양시기를 늦추거나 분양을 아예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수성구 범어동에 지난해 부지 매입을 끝내고 1,400여가구를 공급할 예정인 K사는 건설경기가 악화되면서 분양시기를 1년 넘게 정하지 못하고 있다. 70만평 부지에 3만가구가 들어설 예정인 월배지구에서 8월에 분양할 계획이었던 건설사들은 7월 먼저 분양에 나섰던 A사가 10% 미만의 계약률로 고전하자 속속 분양시점을 무기한 연기했다. S사의 분양대행사인 ‘더감’의 정지훈 실장은 “대구는 지금 IMF 때보다 사정이 더 좋지 않다”고 체감경기를 전했다. 대전과 광주는 그나마 영남 지역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대전은 올 들어 유성구ㆍ대덕구ㆍ동구ㆍ유성구에서 17개 단지 총 1만1,059가구가 입주를 진행하고 있는데 현재 입주율이 평균 70%를 웃도는 것으로 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분양상황은 올 들어 공급물량이 거의 없어 한 마디로 단정지을 상황은 아니지만 3~4월에 분양한 아파트들의 경우 모두 80% 내외로 실적이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최근에 분양에 나선 아파트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대전의 신도심인 둔산동 인근에서 분양을 시작한 한 아파트는 분양률이 현재 6%선에 불과하다. S건설사의 대전 태평동 재건축단지 분양소장은 “분양가가 평당 800만원대로 600만~700만원대의 다른 아파트보다 비싼데다 내년 서남부권 본격 개발을 앞두고 청약자들이 통장을 아끼고 있는 게 분양률 저조의 요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평당 분양가 1,300만원대로 서대전역 인근에 건설될 예정이던 한 주상복합은 4월 분양에 돌입했다가 냉랭한 시장반응을 절감하고 곧바로‘대전에서 본격적인 주상복합 시대를 연다’는 플래카드를 내렸다. 현재는 사업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광주는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되면서 입주율이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수완지구 동시분양 업체 중 하나인 H건설의 한 관계자는 “투기과열지구 해제로 분양권 전매가 가능해지면서 투자자들이 몰려 분양에는 성공했다”며 “그러나 집값이 떨어지면서 현재 살고 있는 집이 팔리지 않는 이유 등으로 입주는 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의 이중삼중의 겹규제가 위력을 발휘해 분양률뿐 아니라 입주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집값 하락은 신규 분양 아파트의 고분양가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최근에는 분양률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수완지구 동시분양에 앞서 공급을 시작한 U업체의 경우 ‘계약금 5%, 중도금 60%(무이자), 발코니 확장, 새시설치 무료’ 등의 혜택에도 3순위까지 청약 경쟁률이 0.5대1을 넘어서지 못할 정도로 청약상황이 저조한 실정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이 같은 상황을 만든 일차적인 책임은 시장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회사에 있지만 지방 부동산시장을 이렇게 만든 정부 정책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지금이라도 지방 부동산시장을 살릴 특단의 대책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 지방 건설업자들 목소리
"투기지역 해제·稅완화를"
"서울과 똑같이 규제…냉각 초래" 주장 '투기지역 해제에서 양도세 등 세금 완화, 지역 기반시설 확충까지….' 지역 건설업자들이 정부에 한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는 사항이다. 분명히 서울 수도권과 여건이 다른데 같은 잣대로 규제를 하다 보니 뿌리가 약한 지방 건설경기가 고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왜 우리가 희생당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대구 달서구 월배지구에서 사업하는 6개의 시행사 관계자들은 최근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있다. 분양률과 입주율이 바닥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정부와 대구시를 상대로 투기지역 해제와 월배지구 외곽도로 확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 협의체의 회장을 맡고 있는 '더감'의 정지훈 실장은 "정부에서 지방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한다고 하는데 나오는 것을 보면 전부 실효성에 의문이 간다"며 "지방 건설업자들이 정말 바라는 것은 투기지역 해제와 세제 완화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서울 수도권과 부산ㆍ대구 등 지방을 같은 잣대로 놓고 무조건 규제를 하는 시각부터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방 건설업계는 지난달 28일 정부가 발표한 지방 건설경기 활성화 대책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투기지역 해제와 1가구2주택 양도세 중과 유예 등 그동안 정부에 요구했던 사항들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지방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해 부동산 전문가들과 업계에서 공통으로 요구하고 있는 '선별적 규제론'의 필요성을 현지에서는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 건설업 관계자들의 이 같은 요구는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서 집값 하락과 함께 거래가 자취를 감추고 입주율ㆍ분양률이 떨어지는 악순환에는 '투기지역' 제도가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투기지역으로 지정되면 양도세를 실거래가로 내야 하는 것은 물론 주택담보대출도 집값의 40%로 줄어드는 등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실제 부산 수영구 광안동에 있는 S아파트 42평형의 경우 지난해 6월 말 투기지역으로 지정될 당시 2억7,100만원에 달하던 시세가 지금은 2억3,850만원까지 뚝 떨어지는 등 지방의 투기지역 아파트단지들은 지역 지정 후 시세가 급락했다. 문제는 투기지역으로 지정되기는 쉬워도 한 번 지정되고 나면 해제는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해제요건이 ▦지정된 지 6개월이 경과한 이후 ▦최근 3개월간 집값 상승률이 전국 평균 이하 또는 소비자물가상승률 이하를 충족한 지역이라고 규정돼 있지만 급변하는 시장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가다. 게다가 최종 결정을 하는 심의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해제가 불가능한 구조다. 이 때문에 해제요건을 갖춘 대다수 지역들이 투기지역에서 풀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건설산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 77개 투기지역 중 22%인 17개 지역이 이에 해당한다. 양도세 중과 유예 등 일부 세제 완화도 지방 건설업계의 요구 사항 중의 하나다. S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과 지방에 같은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현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부동산시장이 극심하게 침체된 지역의 주택은 양도세 중과 대상이나 종부세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등의 역차별적인 발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