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국, 핀란드,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웨덴.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선 인구나 경제 규모와 관계없이 일류국으로 꼽히는 나라들이다. 지난 5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소(IMD)가 발표한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모두 10위안에 들었다.
또 있다. 바로 국민소득 1만 달러 진입의 언저리에서 극심한 노사분규와 금융 위기, 기업 경쟁력 하락으로 인한 경기 침체 등으로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었다는 사실이다. 즉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말대로 `마(魔)의 1만 달러 시대`를 맞아 `선진국으로 도약이냐, 중남미형 후진국으로 추락이냐`의 기로에 선 적이 있다는 것. 그렇다면 이들 국가들은 국가적 위기를 어떻게 돌파했을까.
◇일류 기업이 일류 국가를 만든다= 핀란드의 대표 기업 노키아. 매출이 국민총생산(GDP)의 24%, 수출은 총수출의 24%에 달하는 등 국민 경제에 달하는 위치가 절대적이다. `경제력 집중`이라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하지만 핀란드 국민들은 노키아를 더 큰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믿고 있다.
펙카 야라 핀란드경제연구소 이사는 “노키아는 지난 90년대 초 금융위기를 극복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일류기업 하나가 나오면서 나라 전체가 일등 국가가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믿음은 핀란드 국민들만이 아니다. 스웨덴 왈렌버그가 그룹은 일렉트로룩스(가전)ㆍ에릭슨(통신)ㆍ사브(승용차)ㆍABB(중기계)ㆍSAS(항공) 등을 보유하고 있는 유럽 최대 기업 집단. 게다가 지난 1856년 설립 이래 5대째 창업자의 후손들이 기업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보면 이른바 `재벌`이다. 하지만 스웨덴 유력 일간지 `아프톤브라데`는 “왈렌버그가(家)는 배당과 시세차익에 집착하는 주식펀드나 연금펀드와 달리 기업 경영에 직접 참여한다. 이것은 큰 장점이다. 앞으로도 스웨덴 경제에 적극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스웨덴의 경우 왈렌버그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차등주식제도를 허용, 오너 일가가 소유한 주식에 일반 주식보다 10배나 많은 의결권을 부여할 정도다. 실제로 유럽의 강소국의 대부분은 세계적인 일류 대기업들이 국가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네덜란드ㆍ스위스 10대기업의 매출은 GDP를 넘어서며 스웨덴ㆍ핀란드도 50%를 넘어선 상태다.
◇정부가 일류 기업을 만든다 = 이들 국민들이 대기업에 우호적인 더 큰 이유는 바로 정부와 국민이 함께 힘을 모아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유럽 강소국들의 공통점은 지난 80년대 말 경제 위기 와중에서 정부가 직접 법인세 경감, 산업 클러스터 육성,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 직ㆍ간접적 기업 지원에 나섰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스웨덴의 경우 기업의 투자 촉진을 위해 `투자기금(Invest Fund)` 제도를 운영, 기업이 자발적으로 세전 이익의 40%를 적립할 경우 적립금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면제해줬다. 또 스톡홀름 북서부에 키스타 사이언스 파크를 조성, 700여개 회사의 연구개발(R&D) 기지가 들어서도록 했다.
핀란드도 노키아 최고기술경영자(COO)가 수상 직속기구인 과학기술정책이사회(VTTN) 등에 참석토록 하는 등 일선 기업의 의견을 정책에 실시간으로 반영했다.
특히 네덜란드는 파트타임제 도입을 통한 노동시장 유연화, 각종 규제 완화 등은 물론 개별 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에도 적극 나섰다. 기업 구조조정 비용을 정부 예산으로 지원했으며 총 연구개발(R&D) 지출 중 정부 비중이 절반에 이를 정도다.
이 같은 `존경 받는 기업 만들기`는 미국과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이 지난 90년 이후 10년 호황을 즐긴 것은 레이건 정부의 강력한 구조조정과 규제 완화, 대규모 감세 정책 때문이라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영국도 지난 90년대 이후 수상실 산하로 `규제심사국(RIU)`로 이관, 규제 개혁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광선 기업지배구조개선센터 원장은 “우리 정부도 시장의 직접적인 개입은 자제하되 규제 완화, 노동시장 개혁 등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시장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사업 규모는 물론 기업 투명성 측면에서 세계적인 일류 기업을 만드는 게 2만 달러 달성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美ㆍ英등 `2만弗 달성정책` 노동시장의 개혁이 초점
네덜란드는 파트타임머(시간제 근로자)의 천국으로 불린다. 현재 총고용에서 차지하는 파트타임 비중은 40% 정도로 유럽 연합 평균의 2배에 달한다.
지난 82년 네덜란드 정부가 노동ㆍ 경영계의 `바세나 협약` 체결 이후 임금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고 고동시간을 단축하는 대신 `일자리 늘리기`를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프라케 네덜란드 사회경제위원회(SER) 공보담당관은 “당시 네덜란드는 물류ㆍ금융ㆍ무역 관련 서비스 등 `사람 중심`의 산업 비중이 70% 이상을 차지했다”며 “경제 재건을 위해서는 임금인상, 사회 보장세 축세 등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신성식 한진해운 로테르담법인 과장은 “요즘은 현지 근로자들도 경제 성장으로 인해 임금이 오른 데다 근무시간에만 일하고 언제든지 쉴 수 있는 파트타임을 오히려 선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미국이나 영국, 유럽 강소국 등의 `2만 달러 달성` 정책의 핵심은 노동 시장 개혁에 맞춰져 있다. 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일류기업을 대거 만들면 `파이`가 늘어나 `성장이냐 분배냐`는 식의 이분법적 논리는 사라진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른바 `영국병`으로 악명이 높았던 영국. 이 나라는 지금 노동시장 개혁, 공기업 민영화 등을 통해 70년대 말의 금융 및 산업 공동화 위기를 극복, 유럽에서도 투자 환경이 가장 좋은 국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와 민간기업이 함께 만든 `런던퍼스트센터(LFC)`는 외국인 투자가를 유치할 때 노사 부문의 유연성을 최고 강점을 제시할 정도다. 마이클 굴레이 아시아ㆍ태평양 담당자는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정부나 LFC라 할 것 없이 전방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노동환경이 가장 외국인 기업 투자에 매력적인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아일랜드는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노ㆍ사ㆍ정이 공동으로 지난 87년 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에 맞선 경우. 노조는 경제 성장률 이상의 임금 인상률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으며 기업과 정부는 근로자들에게 지속적인 사회 보장을 약속했다.
그 결과 아일랜드는 최근 5년간 평균 경제성장률 9%를 달성했으며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에 달한다. 한국ㆍ싱가포르 등 `아시아 4룡`에 비유되는 `그린 타이거(Green Tiger)`라는 애칭도 얻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우리나라가 집단 이기주의로 혼란을 빚고 있는 것도 `먹고 입는 것`은 해결됐지만 집 문제 등은 해결되지 않아서 생기는 전형적인 `마의 1만 달러` 현상”이라며 “일본도 1만 달러 시대까지는 춘투가 심각했으나 1만5,000달러가 되면서 잠잠해졌고 2만 달러가 되면서 사회가 안정됐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지금은 당장의 제 몫 찾기보다 2만 달러 시대에 돌입하기 위해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삼성전자 같은 초일류 기업을 10개쯤 만들어야 할 때라는 얘기다. 삼성은 현재 `신경영 선언 제2기`를 맞아 미래사업 발굴, 나라 위한 천재 육성, 국가경제 기여 등을 통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되기`를 중장기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업 내부신뢰도 설문 인사 공정성등 `믿음` 아직 부족
신뢰 경영을 위해 사전에 전제돼야 할 부분이 조직 내부의 신뢰 구축이다.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 우리 기업 내부의 대내적 신뢰 지수는 68.5. 전체 평균 지수(70.54)에도 못 미칠 정도로 내부 구성원간에 믿음이 아직은 부족했다.
▲인사평가의 공정성(67.80)
▲개인 능력 평가를 위한 회사의 투자정도(69.40)
▲직원 상호간의 정보 공유(69.00)
▲부서간의 업무 협조(67.20)
▲복리 후생(66.40) 등 대다수 세부 항목에서 만족 스런 답변을 얻지 못했다.
다만 야유회ㆍ체육대회 등을 통해 일체감을 조성하고 있는 지에는 72.80%가 `예`라고 답변, 그나마 나은 점수를 얻었다. 회사가 직원들의 근본적인 신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객관적 도구보다는 정서적 일체감을 얻어낼 수 있는 과거식 사고에 여전히 치우쳐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형욱기자 choihu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