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2008년 데자뷔(?)


사상 초유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 사태가 전세계 주식시장의 '블랙 먼데이'를 연출하는 등 후폭풍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의 강등 조치를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됐던 리먼 브라더스 사태에 비견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리먼 사태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낳고 혹독한 세계경기 침체로 이어졌듯 미국의 이번 신용도 추락이 일시적 시장 요동이 아니라 또 다른 글로벌 경기불황의 서막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상황은 판이하다. 2008년에는 금융시장 신뢰의 위기였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씨티그룹 등 굴지의 은행까지 하나 둘 무너지자 모든 금융회사가 돈을 움켜쥐고 내놓지 않았고 글로벌 금융시장은 삽시간에 경색됐다. 미국 등 주요국 정부가 막대한 구제금융을 쏟아부으며 시장은 작동하기 시작했고 경기진작을 위한 글로벌 재정부양 공조로 경기회복의 단초를 마련했다. 중국도 4조위안의 엄청난 재정자금을 쏟아부어 경기반등에 성공하며 세계경제를 견인했다. 지금은 어떤가. 단순한 유동성 위기가 아니다. 미국경제 자체, 다른 말로 달러화에 대한 신뢰 위기에서 비롯됐다. 구조적인 문제라는 얘기다. 내부 분열 양상을 보이던 미국의 공화ㆍ민주 양당이 가까스로 정부 부채한도 증액 협상안에 합의하면서 당장의 위기는 넘겼지만 국제사회는 미국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파탄이 난 재정을 회복시킬 수 있을지에 회의감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08년 위기 이후 미국과 함께 세계 양대 강국인 G2로 불리며 세계경기 회복을 주도했던 중국의 반감이 거세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견제와 균형'을 자랑하던 미국의 정치 시스템이 구조적 한계에 봉착해 '정신 분열증'증세를 보이고 있다며 원색적 비난을 퍼붓고 있다. 신화통신은 논평을 통해 미국이 이라크 등 각지의 국제문제 개입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돈을 써 이 지경을 초래했다며 자기 반성을 통해 해외 간섭정책을 수정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을 비난하면서도 내심 속이 탄다. 3조2,000억달러의 세계 최대 외환을 보유하고 이중 대부분을 미 국채 등 달러화 자산으로 갖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당장 미 국채 폭락 우려에 따라 수천억달러의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역작용을 우려해 대놓고 미국을 힐난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정ㆍ통화정책에서 쓸 수 있는 카드가 바닥난 미국이 경기회복을 위해 또다시 제 3차 양적완화 정책을 쓸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세계 지배통화인 달러화의 발권력을 동원해 돈을 또 찍어내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유동성 팽창압력에 직면한 중국 등 상대국 입장에서는 반가울 리 없는 일이다. 저명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2차대전 이후 오늘날까지의 국제금융체계 구도를 확정했던 1944년의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 회의에서 초국가 통화의 창설을 주장했다. 하지만 승전국 미국의 입김 속에 묻혀버렸다. 케인즈는 특정 통화에 세계경제가 담보로 잡히는 사태를 우려했던 것이다. 다시 한번 케인스의 주장을 곱씹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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