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산업 50년] 철강강국 도약 `피땀의 반세기`

지난 73년 6월 9일. 포항제철소의 현대식 용광로에서 처음으로 쇳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당시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은 벌겋게 흘러내리는 쇳물 때문인지 충혈된 눈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가슴속은 용광로보다 더 뜨거운 것이 용솟음쳤다. 제철소 건설 현장에서 직원들에게 “선조들의 피값으로 짓는 제철소 건설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우리 모두는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투신해야 한다”며 책임감을 잊지말라고 강조하던 그였다. 박 사장은 제철소가 우리 경제의 심장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이 믿음은 30년이 지난 지금 현실이 됐다. 철강산업을 시작한지 고작 50년만에 이미 세계 5위의 철강생산국으로 발돋움 했으며, 자동차ㆍ조선ㆍ기계ㆍ전자ㆍ건설 등 각종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됐다. 박건치 한국철강협회 상근부회장은 “철강산업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산업이 이만큼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철이야말로 `산업의 쌀`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고 자부했다. ◇국가경제 이끈 밑거름=철강산업은 국가 전략산업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지원과 민간부문이 결합해 70년대 이후 한국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지난 62년 13만여톤에 불과하던 조강생산은 2002년에는 4,539만톤으로 늘어 40년만에 350여배나 성장했다. 지난해말 조강생산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중국ㆍ일본ㆍ미국 등에 이은 세계 5위를 차지했다. 특히 포스코는 유럽의 다국적기업인 아셀로(Arcelor), 일본의 신일본제철과 함께 세계 3대 철강생산기업으로 우뚝 솟아있다. 철강산업은 양적인 성장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전체 생산중 고부가가치 제품인 특수강의 비중은 지난해 13%에 달했으며 올해는 13.6%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철강산업은 지난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1%, 총수출의 4.2%를 차지해 정보기술(IT)산업의 급속한 발전에도 여전히 국민경제에 적지않게 기여하고 있다. 지난 80년 철강 수출은 15억7,00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90년 42억3,700만달러, 2000년에는 67억2,800만달러에 이어 지난해에는 68억8,700만달러로 크게 늘어나 무역수지 개선에도 효자역할을 하고 있다. ◇연관산업 경쟁력의 기반=철강산업은 관련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기초소재 산업이다. 그만큼 자동차를 비롯한 수요산업에 미치는 전방효과가 크며, 원료ㆍ에너지 등 후방산업의 생산도 적지않게 유발시키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철강의 전후방 효과는 3.82에 달해 산업평균인 1.0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며 섬유(2.01)ㆍ화학(3.32)ㆍ기계(2.15)ㆍ건설(1.68) 등에 비해서도 높게 나타났다. 좋은 철강재 없이는 좋은 자동차나 선박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철강은 수요산업의 가격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동차ㆍ선박의 경우 원가의 7~20%를 철강재가 차지하고 있어 철강의 가격경쟁력이 바로 수요제품의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 철강산업이 제조업의 부가가치액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7% 수준에 달한다. 철강협회의 한 관계자는 “최근 포항을 중심으로 화물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철강재의 공급이 막혀 전산업이 마비상태에 들어간 것은 철강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품질ㆍ가격 `세계 최고`=국산 철강재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특히 가격경쟁력은 일관제철부문의 경우 일본ㆍ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23~37%나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인건비와 제조경비에서 월등히 앞서기 때문이다. 경쟁국에 비해 높은 가동률을 유지하는 것도 경쟁력 우위의 주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본이 세계 최고의 품질ㆍ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 경쟁력에서 떨어지는 것은 과잉설비에 따른 가동률 저하가 주원인으로 분석된다. 생산성에서도 일관제철의 경우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품질도 세계 최고수준인 일본과 비슷한 위치에 오른 것으로 평가된다. 열연강판의 두께적중율은 한국이 97.8%로 일본의 97.3%에 앞서고 있으며, 냉연강판 두께편차에서도 한국은 1.15%로 일본의 1.20%에 앞서고 있다. 조업기술도 제강기술의 경쟁지표인 제강용해시간 등에서 일본과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제품개발력과 고급강 생산기술은 선진국 수준에 미흡하며, 연구개발투자나 설비엔지니어링 분야에서도 크게 뒤처져있다. 전기로제강업과 단압부문의 경우도 원가구조에서 취약하고 제조원가중 원재료비 비중이 50% 가량으로 매우 높다. 특히 물류비 부담이 큰 수입고철 사용비율이 30% 수준에 달하고 있으며 노동생산성도 세계적인 전기로 제강업체에 비해 열세를 보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이 앞으로도 세계 최고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교우위분야에서 한발 앞선 투자와 기술개발로 격차를 늘려 독보적인 위치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영주기자 yjch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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