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엔 환율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면서 외환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년 가까이 이어져온 기록적인 경상수지 흑자행진으로 인해 환율 하락속도를 '관리'할 수 있는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세계 경기 회복과 맞물린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일본의 추가 양적완화 여부에 따라 환율게임 양상도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3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4원 상승한 1,061원20전에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 상승에도 불구하고 엔·달러는 103엔대에 진입하면서 원·엔 환율은 되레 하락했다. 이날 원·엔 환율은 오후3시 현재 100엔당 1,027원70전에 거래됐다. 원·엔 환율이 1,020원대에 진입한 것은 5년 만이다.
원·엔 환율의 급락은 수출에만 기대고 있는 한국 경제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소식이다. 씨티은행도 내년 경제전망에서 한국 경제의 다운사이드 리스크로 엔저를 꼽았다. 장재철 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수출구조가 유사한 일본의 엔화 추가 약세에 따라 제한될 것"이라며 "원화는 경제성장으로 더 강세를 보이면서 내년 1·4분기 말 1,035원, 2·4분기 말 1,020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씨티은행 외에 다른 해외 투자은행(IB)들도 엔화 환율 전망을 잇따라 상향 조정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모건스탠리·크레디트스위스는 3개월 엔·달러 환율 전망을 달러당 110엔, 12개월 전망을 달러당 120엔으로 내놓았다.
수출기업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당장 수출물량이 감소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본 기업들의 반격을 '알아서'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올 초까지만 해도 기업들은 원·엔 환율 하락이 수출기업 수익성에 치명타를 입힐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과적으로 올 한해 사상 최대 이익을 거뒀다. 외환당국이 더 이상 수출기업 편을 들 수 없다는 상황인 것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 경제 회복과정에서 아베노믹스에 대한 신뢰도가 흔들릴 경우 엔화약세는 곧장 엔화강세로 방향이 틀어질 수 있고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원화 환율도 다시 오를 수 있다"며 "미리부터 원화강세를 너무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