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초대석]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대담= 김준수 정보과학부장 jskim@sed.co.kr “우리나라를 동북아 IT 허브로 육성하려면 외국의 투자자들이 매력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먼저 그들이 몰려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향후 5~10년간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먹거리로 IT산업을 지목함에 따라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의 움직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진대제라는 인물이 있다. 삼성전자를 반도체 1위 기업으로 키운 그는 참여정부 초대 정통부장관으로 취임, 통신시장 중심의 정통부 업무영역을 IT산업 전반으로 확대시켰다. 뿐만 아니라 민간 경영기법을 잇따라 도입, 공무원 사회에 긴장감을 고취시키고 있다. 진대제 장관은 “독ㆍ과점체제는 후발 사업자들의 시장진입을 가로막는다”라며 “통신시장의 유효경쟁환경 조성도 과점을 해소해 후발사업자들이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둘 계획”이라고 밝혔다. 취임 3개월을 맞은 진 장관을 만나 그의 IT 신성장 정책과 통신시장 경쟁여건 개선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 최근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통신정책에 대한 언급을 했습니다. 그동안 IT신산업 쪽에 치우쳐 통신시장에 대해선 손놓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는데 장관의 통신정책 기조가 궁금합니다. ▲결코 손을 놓은 게 아닙니다. 기술과 서비스의 급격한 변화로 통신정책 역시 새로운 틀이 필요합니다. 정통부도 지금 이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존의 정책을 완전히 뒤집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환경적 변화에 따라 새로운 발전적 모델을 모색해야 합니다. - 유ㆍ무선 시장에서 선ㆍ후발사업자간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정통부의 유효경쟁정책 의지를 의심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정통부가 추진하고 있는 유효경쟁정책은 후발사업자들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실질적 공정경쟁환경을 조성하자는 것입니다. - 유효경쟁체제의 개념이 불확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통부의 구상은 선발업체의 독주를 막는 쪽에 가깝습니까, 아니면 여러 업체가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쪽에 가깝습니까. ▲시장진입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경쟁 결과 나타난 사업자 수가 유효경쟁정책의 목표는 아닙니다. 다만 시장이 과점체제가 되어서 신규진입이 안되거나 후발업체들이 살아남기 어렵게 되는 상황을 막는 것이 중요합니다. - 유효경쟁정책이 오히려 소비자 혜택을 줄이는 역효과도 낳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소비자 편익과 공익성, 시장 등 세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하는 정책을 수립하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급격하게 진보하는 기술요소는 더욱 정책결정을 어렵게 만듭니다. 이를 잘 조화시켜야겠죠. - 휴대인터넷용 2.3㎓ 주파수대역을 빨리 배정해 달라는 업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자칫 경쟁국들에게 기술ㆍ시장 주도권을 뺏길 것이라는 이유를 내세우는데 정통부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최근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가 휴대인터넷 표준화 프로젝트 그룹을 구성키로 했습니다. 조만간 본격적인 표준화 작업이 진행돼 관련업체간 협의가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만 아직은 관련 기술에 대한 국제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아 시장의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수요전망과 국내외 기술표준화 동향, 산업여건 등을 고려하고 관련업체의 의견 수렴 등 충분한 검토를 거친 후 할당시기를 결정할 생각입니다. - 장관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해 미국을 방문, 현지 주요 IT기업 CEO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국내 IT투자에 대한 현지 기업들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투자를 유치하려는 우리의 의지 못지 않게 현지 기업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현지 기업들은 북한 핵문제ㆍ노사분쟁ㆍ고임금체계 등 때문에 여전히 투자에 신중한 것이 사실입니다. - 방미 기간동안 현지 기업들에게 국내 투자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제시했는지요. ▲이동전화ㆍ초고속인터넷 등 우리나라의 앞선 IT환경과 우수한 인력에 대해서는 다들 매력을 느끼더군요. 방미 기간동안 정부의 새로운 IT추진전략을 소개하는데 역점을 뒀습니다. 특히 우리 정부가 IT 발전을 위해 연간 1조5,000여억원에 달하는 정책자금을 투자하고 있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외국기업들이 온다면 그들에게도 정책자금의 혜택을 주겠다고 밝혔습니다. - 정통부가 선정한 9개 IT신성장 품목중에는 미국ㆍ일본 등 선진국과의 기술격차가 큰 분야들도 있는데, 격차를 좁히기 위한 복안이 있습니까. ▲지능형 로봇이나 시스템온칩(SoC) 등은 국내 역량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이런 분야들은 외국의 유수기업ㆍ연구소가 포함된 국제 컨소시엄을 구성해 개발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 CDMA업계의 해외진출이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CDMA망을 구축계획 역시 북한핵 문제와 맞물려 사실상 중단된 상태인데 수출활성화를 위한 대책이 있습니까. ▲CDMA는 기술 상용화 이후 꾸준히 영역을 넓혀가면서 현재 전세계 59개국 169개 사업자가 CDMA기술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북한지역에 대한 CDMA진출 역시 현재는 다소 위축돼 있지만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경우 정부도 남북교류 협력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진출을 모색할 방침입니다. - 연초 주요 기간통신사업자들이 출연한 3,000억원 규모의 `코리아 IT펀드(KIF)`가 아직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침체된 IT경기 회복을 위해서 적극적인 펀드 운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이달중 기본운영계획을 확정한 후 6월말까지 자(子)펀드를 선정할 예정입니다. 8월중에는 실제 투자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 펀드는 민간이 직접 투자하기 어려운 유망 벤처기업의 창업 및 성장기반 구축을 지원하게 될 것입니다. - 이 기금은 당초 통신시장 활성화를 위해 조성됐지만 정통부가 최근 IT신산업 품목을 육성키로 함에 따라 투자 대상에도 다소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는데요. ▲그렇습니다. 이 펀드는 단순히 통신시장 활성화에 한정하지 않고 향후 고속성장이 예상되는 분야에 집중지원하게 됩니다. 따라서 9개 IT신성장 품목은 당연히 펀드의 중점 투자대상에 포함될 것입니다. 현재 수립중인 펀드 운용계획에도 이를 반영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중입니다. - 통신ㆍ방송의 융ㆍ복합이 가속화하고 있지만 아직 정부 조직은 여기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견해는 무엇입니까. ▲그동안 통신정책은 경쟁촉진을 통한 사업발전과 소비자 편익에 무게를 둔 반면 방송은 공익적 측면이 강조돼 엄격한 진입 및 내용 규제에 정책의 무게가 실려온 게 사실입니다. 특히 방송은 지상파 방송의 절대우위 속에 매체간 경쟁체제가 취약하고 진입장벽도 높습니다. 따라서 기술발전 추세와 사회ㆍ경제적 파급효과 등을 연구ㆍ검토한 후 행정기구 개편방향과 전략을 설정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좌우명 - 日日學 日日新 하루하루가 급변하는 정보기술(IT) 환경속에서 `일일학 일일신(日日學 日日新)`이라는 내 좌우명은 항상 마음속에 간직된 신념이다. 이는 신기술ㆍ신제품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디지털 시대의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내가 삼성전자에 몸담으면서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을 세계적인 위치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배워서 새로워 지려고 애쓰고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노력에 대한 결과는 당장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얻었다.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늘 `일일학 일일신`의 마음으로 스스로 채찍질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생각이다. ■ 발자취 `미스터 반도체` 진대제 장관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별명이다. 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반도체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64메가ㆍ128메가ㆍ1기가 D램 등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삼성신화`를 일군 주역이기도 하다. 그는 서울대- 메사추세츠주립대- 스탠포드대 등 공학도로서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하지만 진 장관은 스스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아무런 배경없이 공부 하나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유학 당시 빠듯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살림에 보태기 위해 용돈을 쪼개 집에 보낸 것은 유명한 일화. 하지만 이보다 더 유명한 것은 그의 학구열. 진 장관은 유학시절 반도체 관련 공부를 위해 교수 집앞에서 밤을 새워 사람을 기다릴 만큼 배움에는 남다른 집착을 보였다. 그가 공학도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IBM왓슨연구소를 떠나 당시만 해도 별 볼일 없던 삼성전자로 옮긴 것은 삼성측의 간곡한 구애 때문. 이 때문에 그는 삼성과의 인연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환기라고 말한다. 85년 미국법인 수석연구원으로 시작해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는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자(CEO)에 오름으로써 모든 샐러리맨의 꿈으로 불린다. 엔지니어인 그가 삼성의 최고경영자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능력 못지 않게 유창한 영어와 비즈니스 마인드도 큰 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 장관은 `토론`을 즐긴다.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그의 토론은 결론이 나기 전에는 좀처럼 끝나지 않아 때로는 사람을 질리게까지 만든다는게 주변의 이야기다. ◇약력 ▲52년 경남 의령 생 ▲경기고 ▲서울대 전자공학과 ▲미국 스탠포드대 공학박사 ▲휴렛팩커드 연구원 ▲IBM 왓슨연구소 연구원 ▲삼성전자 미국법인 수석연구원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메모리사업본부장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시스템 LSI 대표이사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네트워크 총괄사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 내가 본 진대제 장관 - 성재생 ㈜삼테크 사장 진대제 장관은 가능성에 자신의 미래를 거는 사람이다. 공학도들의 꿈의 직장이었던 IBM 왓슨연구소를 떠나 반도체 초보 기업이었던 삼성에 자리를 잡은 일, 삼성을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으로 이끈 일,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를 진두지휘하며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디지털기업으로 성장시킨 일, 이 모두가 변화와 가능성에 대한 그의 열정에서 기인했다고 믿는다. 흔히 진 장관을 논하면서 빠지지 않는 것이 그의 천재성이다. 물론 그의 천재성은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다. 화려한 이력을 제쳐 두고라도 그의 탁월한 기억력에 대한 에피소드만 얘기해도 끝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가 노력가라는 사실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삼성에서 같이 근무하던 시절 진 장관은 생각이 떠오르면 새벽 1~2시에 e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해외출장에서 돌아와 업무가 밀려있을 때면 새벽 2시를 넘은 시간에도 전자 결재를 하고는 했다. 공학도가 경영자로서도 성공한 예가 많지만 진 장관 만큼 천부적 마케팅 감각을 가진 엔지니어도 드물다. 그는 시장의 요구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시장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수요까지도 이끌어 내는 능력을 가졌다. 요즘 한국 IT산업이 힘들다는 얘기가 여기 저기서 들린다. 반도체 경기도 예전만 못하고, 휴대전화 단말기 사업도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위기는 가능성의 단초이며,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훌륭한 이들 중에 가능성에 대해 가장 열려있는 이, 가장 진취적인 이가 현재 정통부 장관의 직에 있다는 것은 한국 IT 산업의 행운이라 생각한다. 진대제 장관의 건승과 그가 가져올 IT산업의 새바람을 기대해 본다. <정리=정두환기자 dh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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