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정부를 탓하기 전에

한국경제연구원의 좌승희 원장이 제기한 `한국 경제 10대 불가사의`는 그 의도가 어디에 있든 우리가 반드시 곱씹어 봐야 할 이슈라고 생각된다. 1980년대 말부터 경제민주화, 균형성장, 분배정의의 기치아래 각종 개혁조치들이 시행됐지만 선진화를 이뤄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잠재 성장능력, 생산성, 기업수익률 등 거의 모든 경제지표들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좌 원장은 꼬집었다. 그가 이 같은 문제제기를 한 것은 정책의 의도와 정책수단 사이에 큰 괴리가 있는 것이 입증된 만큼 정부의 개입보다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낫다는 주장을 간접적으로 펴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재계를 대변하는 연구기관의 대표입장에서 당연히 제기할만한 이슈로서 문제제기 자체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이 문제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에서 10년 가까이 머물고 있는 한국 경제가 2만달러 선을 넘을 수 있느냐와 직결되는 사안이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병행발전이라는 이념적 명제로까지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난 1988년 민주화의 바람이 급격히 불기 시작한 이래 한국 경제는 성장과 분배의 갈림길 앞에서 우왕좌왕하다 둘 다 놓치는 우를 범했다. 잠재성장률 하락 등 성장동력이 크게 저하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력 집중현상이 되레 심화됐고,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간 격차는 더욱 벌어졌으며, 빈부 격차도 더욱 커졌다. 이렇게 된 데는 무엇보다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정책이 지나치게 시류에 편승하고 전시효과를 내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탁상행정과 중구난방식 집행으로 인해 정책의 효율이 떨어져 국가적 에너지를 발전과 성장 쪽으로 결집시키는데 실패했다. 아울러 정책 의도가 결실을 거두지 못한 데는 재벌기업을 비롯한 기득권층의 정경유착과 정책회피 내지는 방해가 상당히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시장의 자유를 외치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의 우산 아래에서 `보호`받기를 자청하는 반시장적 행태를 보여왔다. 정부의 규제가 최소화 돼야 한다는 재계의 주장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무엇보다 기득권층이 권리에 따르는 책임을 인식하는 의식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이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병행발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천민자본주의의 속성을 벗지 못한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성숙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어느 수준에 와 있는가에 대해 재계는 자성이 있어야 한다. <우승호기자 derrida@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