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반 타의반 구조조정의 몸살을 앓은 현대정공(대표 박정인·朴正仁)이 새천년의 앞자락에서 찬란한 부활을 다짐하고 있다.「국내 최대 자동차 모듈부품 전문회사.」 이 길 말고는 미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재간이 없어보인다. 그래서 이 회사의 변신노력은 필사적이다.
현대정공은 지난 97년말까지만해도 괜찮은 회사축에 들었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 생산회사로 자리한데다 갤로퍼, 산타모 등 자동차를 만들어 짭짤한 재미를 봤다. 정몽구(鄭夢九) 그룹회장이 직접 일군 회사인 만큼 자부심도 남달랐다.
하지만 98년을 고비로 상황이 악화되자 걷잡을 수 없었다. IMF(국제통화기금) 위기로 정부의 「7대사업 구조조정 과제」가 발표됐다. 4,200억원의 매출을 자랑하던 철도차량 사업이 한진중공업·대우중공업이 가세한 통합법인에 출자형식으로 넘어갔다. 더욱이 기아자동차 인수를 계기로 그룹의 자동차 관련사업부문이 모두 현대자동차로 일원화하는 계획이 발표되는 바람에 차량사업도 날아갔다.
치명적이었다. 총 2조7,000억원인 매출 중 차량사업부문(1조3,000억원), 공작기계사업부문(2,000억원), 철도차량 사업부문(4,200억원) 등 1조9천억원이 넘는 3개 사업부문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졸지에 매출이 8,000억원에 불과한 중견기업으로 전락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이런 구조조정이 미리 예정되어 있었던터라 대비할 시간이 있었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벼랑끝까지 몰렸지만, 「시간」이라는 버팀목에 기댄 채 회사는 새로운 전략을 짜냈다.
천신만고 끝에 찾은 해답은 자동차 모듈부품 회사로 거듭나는 것.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그룹내 안정된 대량의 수요처가 있다는 점 영세한 국내 자동차 부품산업을 한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 미래지향적인 사업이라는 점 등 명분과 실리가 다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내에서 현대정공이 제일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근거가 무얼까.
정문신(鄭汶信) 기획이사는 『지난 5년간 완성차를 만든 경험은 현대정공만의 무기』라고 강조한다. 부품 개발시 완성차 제조업체 입장에서 새롭게 부품 설계를 할 수 있어 원가절감, 생산공정 단순화, 재료비 절감 등이 수월하다는 것. 이와 함께 완성차를 생산하면서 수천개나 되는 하청업체를 관리해본 것 역시 현대정공만의 강점이다.
그룹 회장의 재가가 떨어졌다. 지난 4월, 「모듈부품 전문회사」라는 목표가 수립되자 특유의 추진력이 발현됐다. 곧장 현대자동차 울산공장내 1만여평에 연산 50만대규모의 모듈 부품 설비를 갖췄다. 이달초부터 당장 현대자동차의 신규모델 「트라제XG」를 비롯, 「에쿠스」, 「다이너스티」, 택시용 「소나타」등에 샤시 모듈부품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불과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연말에는 가이자동차 전 차종에 샤시 모듈부품을 공급할 계획이고 내년부터는 현대자동차의 모든 신규모델에, 기아자동차의 기존및 신규모델 전 차종에 샤시, 의장 모듈부품을 공급한다는 목표다.
짧은 시간에 이 사업을 안착시키기 위해서 두가지 전략이 채택됐다. 우선 몸집 불리기다. 내년 상반기까지 기아자동차 계열사중 부품회사 4~5개사를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M&A(인수·합병)를 준비중이다. 여기에는 5,000~6,000억원 정도의 자금이 소요될 전망이다.
기술력 확보는 또다른 목표. 이를 위해 해외 선진 업체와 기술제휴, 자본제휴에 적극 나선다는 구상이다. 이미 에어백 생산을 위해 세계 최고 에어백 생산회사인 미국 브리드사와 기술제휴를 맺었다. 또 ABS 부품 생산을 위해 독일 보쉬사와 기술 협력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 특히 보쉬와는 기술이전 뿐아니라 자본제휴도 논의되고 있다.
이와 함께 현재 150명 수준인 기술개발 연구팀을 내년에는 500여명으로 늘리는 등 자체 기술력를 갖추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올해 이 회사의 모듈부품사업 매출은 4,000억원대. 사업 첫해치고는 괜찮은 편이다. 내년에는 1조6천억원대로 늘어난다. 기존 사업부문까지 합치면 회사 매출은 2001년 3조원 2002년 3조8천억원에 이르고 2003년에는 이분야 글로벌 톱10에 진입한다는 플랜이다.
「현대」마크가 아로새겨진 자동차부품들이 GM, 포드 자동차 구석구석에서 존재를 뽐내는 장면도 이때 쯤이면 다반사로 보게 될 것이다.
문주용기자JYMOO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