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문자 문화 중시' 플라톤 사상 규명

■ 플라톤 서설 (에릭 A.해블록 지음, 글항아리 펴냄)


플라톤은 ‘이상국가로부터의 시인의 추방’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전통적인 구송(口誦) 문화보다 문자문화를 중시한 플라톤은 시인들이야말로 구송 문화의 유력한 대표자이자 구송 문화를 젊은이들에게 전파하는 교육자라고 보고 이들이 추방돼야 문자 문화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왜 플라톤은 시인들이 구송문화의 대표자라고 생각한 것일까? 미국 하버드대와 예일대 교수를 역임한 저자는 책에서 미디어론 관점으로 플라톤의 사상을 분석한다. 책은 1963년에 출간됐는데 당시는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가 등장하던 시기다. 플라톤이 살았던 시기 역시 알파벳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구송 문화에서 문자 문화로 전환되던 시기다. 플라톤은 이 시기에 종래의 구송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인간의 사고습관과 교육형태를 비판하고 문자 문화에 걸맞는 사고유형과 교육제도를 만들고자 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상국가로부터의 시인의 추방’이라는 플라톤의 주장을 바탕으로 그리스 문화에서 서사시의 존재 의의를 논하고 당시 문화적 배경에서 플라톤 사상이 지닌 의의를 규명한다. 책은 시인에 대한 플라톤의 공격을 이해하려면 시인이 예술가이며 그 시가 예술작품이라는 오늘날의 선입견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플라톤에게 시인이란 그리스 교육제도의 핵심을 이루는 집단이며 문화장치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중심적 존재였다는 것이다. 이에 플라톤은 전통의 반복학습을 폐기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하는 ‘혼’을 갖추도록 노력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구송문화는 편안하게 무용담을 들으며 그들의 행동을 기리고 기억하려는 반복학습의 전형이기 때문에 무용담을 듣는 자세는 듣는 사람을 수동적인 청취자로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이런 중독성 ‘청취’로부터 독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혼’을 일깨우도록 하는 일에 나섰다는 것. 예를 들어 ‘프시케’라는 그리스어는 사람의 호흡, 생명력 등을 의미했지만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에 걸쳐 도덕적 결정과 과학적 인식의 주체로서의 ‘자아’, 자율적인 ‘인격’과 같은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이 같은 의미 변화는 구송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전환에 따라 발생한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하나의 메시지가 문자에 의해 기록으로 남게 되면 입으로 말하며 그 내용과 일체화될 필요가 없지만 문자로 남으면 오히려 ‘나’는 반성적이고 분석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자 문화는 ‘추상화’ 능력도 가능케 만들었다. 인간은 하나의 개념을 사건으로부터 분리해 그 문맥을 추상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이렇게 해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의 토양이 마련됐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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