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우경화 노선이 더욱 노골화될 경우 중국이 무역 제재 등 경제적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북아 지정학적 갈등의 가장 큰 리스크를 일본 기업이 지게 될 것입니다."
지난해 말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한중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아베 총리는 올해 헌법해석 변경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확립에 나서는 등 극우 노선을 강화할 것으로 보여 동북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오는 4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한일 관계 봉합에 나서고 있어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은 세계 최대 정치 컨설팅 회사인 유라시아그룹의 동북아 지역 분석책임자인 니콜라스 컨서너리, 스콧 시먼 수석애널리스트와 e메일 인터뷰를 했다. 이들은 동북아 갈등이 우발적인 군사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경제적 충돌로 비화될 여지는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야스쿠니 참배를 넘어 올해 평화 헌법 개정, 집단적 자위권 확립 등 극우 제국주의 노선을 강화하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이는 이웃 나라의 반발뿐 아니라 일본 내에서의 본인 지지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시먼 애널리스트는 "아베는 일본을 끌고가겠다는 강한 야망을 갖고 있고 설사 여론과 배치되더라도 자기가 옳다고 여기면 밀어붙이고 있다"며 "여론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여론을 만들어 주도적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론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치인' 아베가 아니라 우경화에 대한 확고한 사명감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7월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여당인 자유민주당이 압승한데다 2016년까지 주요 선거가 없고 아베를 대체할 만한 리더십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 아베의 정치적 공간을 넓히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시먼은 덧붙였다.
최근의 동북아 갈등이 군사적 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에 대해 컨서너리 수석애널리스트는 "매우 적다"고 단언했다. 한중일 모두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데 따른 이익이 없는데다 한미동맹·미일동맹 등 강력한 억지력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중일 간 무력 충돌 가능성은 10% 미만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현재의 긴장이 반일 시위나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등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상존한다"며 "더 나아가 중국 정부가 무역 제재 등에 나설 경우 일본 기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중국의 시진핑 체제가 올해 국내의 경제·정치적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어 최근 아베의 도발에 상대적으로 심사숙고한 대응을 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4월 말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 동북아 갈등을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시먼 애널리스트는 "이번 방문 기간 오바마 대통령은 한·일 정상을 향해 '좀 더 많은 노력을 해달라'고 주문할 것"이라면서도 "동북아 관계 개선에 결정적 계기가 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단언했다. 오바마의 설득으로 풀리기에는 갈등의 골이 너무 깊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한일 정상이 오바마와의 면대면 접촉을 통해 대화의 문을 열기 위한 작지만 중요한 스텝을 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은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 이벤트보다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아베 총리가 자연스럽게 한자리에 모이는 이 회의가 다른 공식·비공식 접촉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실질적인 이벤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먼은 "아베가 박 대통령 혹은 시진핑과 악수만 하더라도 긍정적인 첫걸음이 될 것"이라며 "서로를 향해 공공연한 비난만 없으면 이 회의에서 관계 진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아베가 이때를 전후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단행하거나 또 다른 우경화 행보를 한다면 이 역시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이들은 우려했다.
◇유라시아그룹=지난 1998년 설립된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정치·경영 컨설팅사다. 창립 당시 소비에트연방과 동유럽에 초점을 맞췄다가 현재는 아프리카·아시아·유럽·라틴아메리카·중동·북미 등 전세계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어떤 나라나 동맹도 확고한 글로벌 리더십을 갖추지 못한다는 의미로 'G제로 시대'가 도래했다고 지적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근에는 '지정학적 불안'을 올해 세계 최대 위협 요인으로 꼽은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