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신냉전시대 온다] <3>동북아 경제권 위협하는 '정냉경냉'

영토분쟁에 교역·투자 위축… "세계경제 2008년이후 가장 취약"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 "중·일 분쟁이 경기회복 믿음 훼손"
갈등 장기화땐 중·일 모두 타격 글로벌 경제 성장엔진 약화 우려


중일 간 영토 분쟁과 양국의 경제교류 차질은 유럽의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속도가 떨어진 글로벌 경제에 또 하나의 감속 요인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양국의 대치는 일단 소강 상태에 들어갔지만 중국의 대일 경제보복이 지속되고 있는데다 양국 감정 악화로 향후 중일 교역이나 투자는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갈등 장기화에 따른 교역ㆍ투자 위축은 가뜩이나 가파르게 둔화하는 중국 경기의 경착륙과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를 의미한다. 중일 관계가 정치적으로 냉각돼도 경제는 과열되던 '정냉경열(政冷經熱)'에서 정치와 경제관계가 모두 얼어붙는 '정냉경냉(政冷經冷)'으로 양상을 달리하기 시작하면서 전문가들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동북아 영토 갈등이 글로벌 경제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은 20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교역 정체로 경기회복이 지연되는 와중에 중일 간 영토 분쟁까지 불거진 탓에 세계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래 가장 취약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구리아 사무총장은 "교역이야말로 세계 경제가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잠재적인 힘"이라며 중일 분쟁은 "모두가 구덩이에서 나오는 데 집중해 있는 순간 불거짐으로써 (경제회복에 대한) 믿음을 더욱 훼손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타이밍이 매우 안 좋다는 것이다.

중일 간 교역 규모는 지난해 전년 대비 14.3% 증가한 3,450억달러에 달한다. 특히 일본의 경우 전체 교역의 21%를 중국에 의존할 정도다. 다이와종합연구소는 일본의 대중 수출길이 한 달만 막혀도 산업생산이 2조2,000억엔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무역수지가 7~8월에 연속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9월에는 최대 교역국인 중국에서 벌어진 일본 제품 불매운동 여파가 나타날 것이라며 내수 부진에 수출 감소까지 더해져 3ㆍ4분기 일본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게다가 중국은 대일 경제보복의 일환으로 주요 세관에서 일본 수출품에 대한 통관검사를 강화하며 통관절차를 지연시키고 있다. 세관에서 발이 묶인 수출품은 상당 부분 중국진출 일본 생산공장이 수입하는 핵심부품이다. 통관 지연은 곧 완제품 납기를 지연시켜 일본 기업에 타격을 입히게 된다.

중국 경제도 일본과의 마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올 1~7월까지 일본의 대중 직접투자는 47억3,000만달러로 홍콩을 제외한 최대 투자국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중국으로 유입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일본 정부 집계로는 120억달러, 중국 측 통계로도 63억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최근 대규모 반일 시위와 폭력 사태를 겪은 일본 기업이 큰 충격에 휩싸이면서 일부는 '차이나 리스크'를 의식해 추가 투자를 꺼리거나 아예 생산거점을 동남아 지역으로 옮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골드만삭스증권의 캐시 마쓰이 애널리스트는 "중일 간 긴장감이 지속되면 일본 기업이 대외직접투자 일부를 중국에서 동남아 등 역내 다른 시장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재정위기와 중국 경기둔화로 이미 외국인 자본이 일부 유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기업이 빠져나갈 경우 중국 경기 하강 속도는 한층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파나소닉과 도요타 등의 일부 중국 공장은 시위 여파로 아직까지 가동되지 않고 있다.

물론 중일 교역 둔화와 경제교류 경색은 단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전무는 "현재는 비교적 단기간에 수습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고 내다봤다. 하지만 중일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아시아 경제성장에 제동이 걸리고 그에 따라 글로벌 경제 성장 엔진이 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유 전무는 "만일 사태가 장기화해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거나 중일 정권 교체 이후까지 갈등이 장기화한다면 동북아 경제권이 부상의 기회를 잃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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