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 나의 인생/나춘호 예림당회장] 49.ISBN과 POS 제도

1990년 1월 출판문화협회 정기총회에서는 그 해 중점 사업으로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국제표준도서번호)과 POS(Point Of Sale System-판매시점정보관리)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고 회장단 구성과 함께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그 해 제1차 출협 이사회에서 회장에 권병일(지학사 대표 ), 부회장에는 나를 비롯해 김낙준(금성출판사 대표), 이기웅(열화당 대표) 등 3명이 선출됐다. 그리고 총회에서 결의한 ISBN 및 POS제도 도입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나에게 추진위원장이 맡겨졌다. 나는 이 제도에 관심 있는 몇몇 출판사 대표들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ISBN제도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과 그 동안의 진행과정을 자세히 점검했다.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은 도서의 국제적인 주민등록번호인 셈이어서 전 세계에서 발행되는 모든 책에 고유번호를 부여하는 제도다. 그리고 POS는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점 등에서 오래 전부터 보편화된 제도로 상품이 팔리면 계산과 함께 재고관리까지 해주는 시스템으로 상품의 구입과 관리, 판매내용을 바로 파악할 수 있다. 출판사와 서점간에 POS 연결을 하기 위해서는 도서정보를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ISBN제도 실시가 선행되어야 했고, ISBN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ISBN 가입국이 되어 국가별, 또는 언어권별로 도서번호를 부여 받아야 했다. ISBN제도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76년 출판문화 6월호에서였다. ISBN이 도서 유통과 관리에 얼마나 편리하며 도서의 국제교류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를 소개한 내용이었다. 그 후에도 출판문화지에서는 ISBN본부(관리위원회)에서 작성한 매뉴얼을 소개하면서 ISBN제도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촉구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출판계가 영세한데다가 전래의 유통습성에 젖어 있어 대부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도서관리와 도서정보를 총괄하는 중앙도서관 역시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987년 11월, 도서관법이 새로 개정됐다. 그리고 이듬해 8월, 시행령이 공포되면서 ISBN의 관리는 국립 중앙도서관이 담당하며 1990년부터 시행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국립도서관에서는 여전히 ISBN의 도입과 시행을 서두르지 않아서 출판계가 앞장서게 된 것이다. 출판문화협회에서는 1988년 3월부터 당시 서독의 베를린에 있는 ISBN본부와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제도의 도입방법을 강구했다. 우선 국가번호를 배정 받기 위해 국내 출판계의 현황을 알려 주고, 우리보다 먼저 ISBN 제도를 도입한 일본을 방문하여 도입경위와 운영상황에 대해 알아봤다. 1989년 7월에는 국제 ISBN본부의 요구에 따라 한국의 출판사 현황과 연간 발행종수, 발행부수 등의 출판통계를 보내주었고 ISBN본부에서는 국가별 (또는 언어권별) 번호를 부여할 때 회비나 재정적 부담이 전혀 없다는 통보를 해 주었다. 또 우리와 같은 언어권인 북한이 동의한다면 남북한이 공동으로 같은 번호를 배정 받아 관리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북한과는 대화가 단절되었을 뿐 아니라 당시의 북한 실정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형편이어서 이 문제는 그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일찍부터 출판물 유통 현대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ISBN과 POS 제도 추진위원장이 되면서 이 기회에 ISBN 및 POS제도에 관해 좀더 깊이 알고 싶었다. 또 제도를 하루 속히 도입하기 위해서는 ISBN의 번호 배정이 급선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 문제를 빨리 매듭짓기 위해서는 ISBN본부와 문서만 주고 받을 것이 아니라 직접 방문해서 구체적인 내용과 방안을 알아보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해 4월 출협 이두영 사무국장과 함께 유럽으로 향했다. ISBN본부를 찾아 나선 것이다. <온종훈기자 jhoh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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