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초단체장·의원 정당공천제 폐지

고경훈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박사(왼쪽), 정연주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오른쪽)

내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두고 시ㆍ군ㆍ구청장 등 기초단체장과 시ㆍ군ㆍ구의원 등 기초의원 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다. 여야는 지난 대선 때 모두 기초지방선거에서의 정당공천 배제를 공약했지만 정작 지방선거가 다가오자 주춤하고 있다. 정당공천을 배제할 경우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다는 반론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정당공천제 폐지 주장자들은 이 제도가 지방정치의 중앙정치 예속을 가져오고 또 각종 지방토착 비리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폐지 반대측에서는 헌법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당제도가 지방에서 필요하고 또 여성을 비롯한 신진ㆍ소수세력 보호를 위해서도 이 제도가 유지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아래에 찬반 양론을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찬성 : 고경훈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박사


중앙정치 휘둘려 지방자치 왜곡
주민 위한 생활자치 취지 살려야

기초단체장에 이어 기초의원 선거에까지 정당공천제를 도입해 실시된 2006년 5ㆍ31 지방선거와 2010년 6ㆍ2 지방선거에서는 많은 문제점이 나타났다. 무엇보다 정당공천제가 확대됨으로써 지방선거를 중앙정치에 완벽히 예속시켰다. 유권자보다는 국회의원에게 잘 보여야 선거에 나서 당선될 수 있는 사슬이 생겼고 이는 매관매직 등 공천비리를 만발시켰다. 게다가 지방선거가 정권의 중간평가적 의미를 띠게 되면서 후보의 면면이나 정책은 무의미해지고 정당의 기호만 보고 찍는 '일렬투표' '묻지마 투표'가 만연했다. 정당공천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 상황에서 당선된 기초단체장과 의원들은 주민보다는 소속 정당과 국회의원의 눈치를 보게 될 게 뻔하고 이는 지방자치의 왜곡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영남과 호남처럼 정당독점이 강한 지역에서는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공식이 세워졌다. 그 결과 주민을 위한 자치가 아니라 지역구 국회의원을 위한 자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방자치가 왜곡되고 있다. 게다가 정당공천제로 인해 지방행정이 중앙정치의 논리에 따라 휘둘려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제대로 착근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것이 사실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단체장에게 특정인을 승진시키라고 압력을 넣는가 하면 자치단체가 발주하는 공사는 특정업체에 낙찰되도록 지시하고 모 광역시에서는 국회의원이 의정활동 후 귀경하는데 모 구청장이 업무상 출영을 못하자 그 구청장은 다음 지방선거 공천에서 탈락하는 일도 발생했다. 또한 지방의회가 지역구국회의원의 지시에 따라 원(院)이 구성되고 중요한 심의안건을 처리하면서 "아무개를 의장으로, 아무개를 부의장으로, 상임위원장에는 아무개를 뽑으라"지시하고 이를 어기면 당원자격정지 징계 등 처벌을 내리는 일도 발생했다. 모 지방의회에서는 회기 중에 성원이 미달된 이유가 그 지역구 국회의원이 장모상을 당해 지방의원들이 모두 그곳에서 눈치보느라 회의에 참석하지 못해서였다는 말도 있다.

선거과정에서의 문제점뿐 아니라 선거 이후에도 정당공천에 따른 문제점은 나타나고 있다.주민들에 대한 봉사와 지역발전을 추구해야 할 지방행정에 정치논리가 개입하면서 지방의회와 단체장이 동일정당 출신인 경우 지방의회의 단체장 견제는 어렵게 되고 다른 정당일 경우 단체장과 의회의 관계는 지나친 대립과 갈등이 만연한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두 번의 지방선거를 통해서 정당공천제 도입의 명분이었던 책임정치 구현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허울뿐인 구호였음이 드러난 이상 이 제도의 폐지를 포함한 개선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먼저 지방선거에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후보 공천기준의 확립과 이의 철저한 적용이 요망된다. 즉 정당법과 공직선거법 등 법제도로 정당의 공천방식을 규율할 수 있도록 법률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아울러 지역별 일당 독점현상과 지역갈등을 심화시키는 지역주의의 선거행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주민과 시민단체에 주도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주민추천제와 시민단체 추천제를 병행해 실시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주민추천제와 시민단체 추천제를 통해 우리 사회의 소수와 약자들이 일정 비율 이상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면 정당공천제의 명분도 살리면서 문제점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당에 의한 후보결정권을 부분적으로나마 보완할 수 있는 장치로서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일정 수 이상의 유권자의 추천을 받도록 하는 주민추천제와 시민단체 추천제를 병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최선의 방안은 기초자치단체장과 시ㆍ군ㆍ구 의원을 뽑는 생활자치의 공간에서만큼은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반대 : 정연주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


정당 있어야 지방권력 분립가능
신진·소수세력 진입통로 역할도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으로 야기되는 수많은 문제를 우리 모두가 알고 있고 우리 모두가 분노한다. 그러나 정당공천 폐지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야기한다.

먼저 정당배제는 지방자치제의 중요한 현대적ㆍ헌법적 기능인 다원적 민주주의와 권력분립 실현을 무력화시킨다. 왜냐하면 지방자치단체에는 중앙정부와는 다른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형성될 수 있고 이는 지방자치단체 상호 간에도 마찬가지며 또한 지방자치를 통해 정책결정과 집행권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기능적으로 분산시킴으로써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방자치단체 상호 간의 수직적ㆍ수평적인 권력통제를 실현할 수 있다. 오늘날의 정당민주주의에서 이러한 기능들은 바로 정당을 통해 실현되고 따라서 헌법이 복수정당제를 보장하고 있는데 지방선거에서의 정당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이러한 기능을 형해화 시키기 때문이다.

평등의 원칙의 측면에서 볼 때 다른 여타의 선거에서 인정되는 정당의 후보자추천을 유독 기초지방선거에서만 금지하는 것은 합리적 차별사유 없이 기초지방선거의 후보자와 유권자를 차별하는 것으로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 헌법재판소도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의 경우를 나눠 법적으로 달리 취급해야 할 이유가 없고 지방분권이라는 자치기능에 있어서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판시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무소속후보자는 특정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 받음을 표방할 수 없고 정당의 당원경력을 표시하는 행위는 허용된다. 그런데 정당공천을 금지하면 모든 후보자는 무소속이 되는데 이 경우에는 법을 개정해서 모든 무소속후보자가 특정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 받음을 표방할 수 있도록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당공천을 금지하는 경우까지 무소속후보자가 특정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 받음을 표방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등의 이유로 위헌이라고 헌재가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역시 위헌이다. 왜냐하면 한쪽에서 정당공천을 금지하면서 다른 한쪽에서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 받음을 표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것은 상호모순이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의 표방은 효과 면에서 정당공천과 동일한 문제를 야기한다. 아울러 후보자의 당원경력 표시 허용도 유사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한편 지방의회 선거에는 지역구선거와 더불어 비례대표 선거가 병존하는데 이는 비례대표제가 전문가의 지방자치 참여확대와 소수보호 및 신진세력보호, 그리고 평등선거의 원칙 구현, 특히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 등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례대표제는 정당공천을 통한 정당의 개입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정당공천 금지는 바로 이러한 비례대표제를 부정하고 폐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이는 비례대표제 확대라고 하는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것이다.

결국 기초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허용은 헌법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 해결은 정당의 민주화나 상향식 공천제, 비례대표제의 확대 등의 다양한 제도적 보완을 통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도 보완으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치가와 더불어 국민의 의식 개혁이다. 수준 높은 유권자의 헌법에의 의지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세련된 국민이 전제되지 않는 세련된 정치와 지방자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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