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엘리트 중심, 아로요 퇴진요구정부 "반란사태"… 에스트라다 배후 지목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정권에 불만을 품은 소장파 군인들이 27일 마닐라 시내 금융중심지의 복합 쇼핑센터를 점거하고 정부군과 대치하고 있다. 최대 200명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은 아로요 정부의 부정부패와 권력연장 음모를 비난하고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정부는 이들을 쿠데타 기도 세력으로 지목하고 무력 진압을 지시, 유혈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점거ㆍ대치
자동화기와 폭탄으로 중무장한 수십 명의 소장파 군인들은 아로요 대통령이 쿠데타 기도 세력에 대한 검거령을 내린 지 수시간 만인 이날 새벽 3시(한국시각 새벽 4시)께 대형 쇼핑몰과 고급 아파트가 입주해 있는 금융 중심가의 `글로리에타 콤플렉스`에 진입했다. 이후 건물 주변에 부비트랩과 폭발물을 설치하고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한 채 정부군과 대치 중이다.
이들은 루스 피어스 필리핀 주재 호주 대사 등 외국인들을 포함한 300여명의 아파트 입주민들을 이날 오전 석방했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외국인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인들을 이끌고 있는 장교는 위관급 10여명으로 1995년부터 97년 사이 필리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엘리트 군인들로 알려졌다.
정권 퇴진 요구
이들은 이날 새벽 발표한 성명을 통해 아로요 대통령과 앙겔로 레이스 국방장관의 퇴진을 요구했다. 아로요 정부가 이슬람 반군에게 무기와 탄약을 몰래 팔아 폭탄테러를 조장하고 있으며 이는 불안한 정치 상황을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원조를 받는 것은 물론 권력 유지를 위해 내달 중 계엄령을 선포할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자신들은 쿠데타 기도 세력이 아니며 권력을 잡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대변인을 자청한 안토니오 트리야네스 해군 대위는 “정부와의 협상은 없으며 정부가 퇴진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싸우다 죽겠다”고 말했다.
필리핀에서는 지난 주부터 정부 정책에 불만을 품은 젊은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아로요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며 미국의 강력한 우방으로 떠올랐지만 열악한 생활환경과 불평등, 저임금 등 국내 문제를 소홀히 한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BBC 방송은 “대중의 지지가 적어 반란이 정권 교체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은 필리핀 내부의 불안한 상황을 드러내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 대응
아로요 대통령은 이들을 쿠데타 기도 세력으로 지목하고 신속하게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이날 오전 오후 5시(한국시각 오후 6시)까지 항복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낸 데 이어 아로요 대통령은 계엄령 바로 아래 단계인 `반란 사태`를 선포, 군 병력과 경찰에게 무력 진압을 명령했다.
앞서 아로요 대통령은 26일 긴급 각료회의를 마친 뒤 대국민 담화를 발표해 일부 젊은 군인들의 쿠데타 음모가 드러났다며 이날 무기를 지닌 채 근무지를 이탈한 군인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2001년 군부 주도의 민중봉기로 쫓겨난 뒤 현재 부정 축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셉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이 이번 사태의 배후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 소식통은 전직 군인으로 과거 쿠데타를 기도한 바 있던 그레고리오 호나산 상원의원과의 연루 여부에 대해 정부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진성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