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남북 비밀접촉 내용을 공개한 1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제1차 한·태평양도서국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방한한 파푸아뉴기니 등의 외교장관과 오찬을 함께 하기에 앞서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 /왕태석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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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일 "남측이 비밀접촉에서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북한은 특히 남북 간 비밀접촉에 나선 남측 인사의 실명을 이례적으로 거론하고 이명박 정부를 '역적패당' '불한당' 등으로 표현하며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고 밝혀 남북관계 경색국면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형식을 빌려 지난 5월9일 김천식 통일부 정책실장, 홍창화 국가정보원 국장,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비밀접촉이 있었음을 공개했다. 국방위 대변인은 "남측이 비밀접촉에서 6월 하순과 오는 8월, 내년 3월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이를 위한 장관급회담을 5월 하순 열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남북 간 비밀접촉 사실을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는 점에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간 남북 간에는 여러 차례 비밀접촉이 있었지만 남북당국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예컨대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지난 2009년 노동부 장관 시절 북한과의 싱가포르 비밀접촉을 갖고 정상회담 등을 논의한 것이 사실로 알려져 있지만 남북당국은 이를 공개적으로 시인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북한이 비밀접촉 사실까지 공개한 것은 '남한과는 더 이상 접촉이나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는 5월30일 북한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가 대변인 성명에서 "남한 정부와 상종하지 않겠다"고 밝힌 일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더구나 비밀접촉이 있던 날은 이명박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에서 "내년 봄 서울 핵정상회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대할 수도 있다"는 내용의 '베를린 제안'을 했는데 북한은 비밀접촉을 밝히며 베를린 제안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이례적으로 비밀접촉 사실을 공개한 것은 남북 당국간 신뢰가 없고 남북 간 접촉에서 성과 있는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천명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과 직접대화를 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분석도 있다. 4월 중국은 '남북대화→북미대화→6자회담'의 3단계 회담방안을 한국과 미국 측에 제의했고 한미 양측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남북접촉을 공개해 1단계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리고 2단계인 북미 간 직접접촉을 추진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명분을 쌓기 위한 남북 정상회담은 없다. 이를 위한 비밀접촉도 없다"고 밝혀왔던 이명박 정부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와 비핵화를 원칙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시도해온 우리 정부가 다른 한편으로는 비밀접촉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남측은 '비밀접촉이 오간 이야기를 알리지 말아달라' '정상회담 개최를 빨리 추진시키자'며 돈봉투까지 내놓았다"는 등의 세부내용까지 공개한 것이 이를 대변한다.
한편 우리 정부는 북한이 비밀접촉설을 공개하자 잇따라 내부회의를 여는 등 대응책을 논의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실명이 거론된 인사들은 전화기를 꺼놓은 채 언론과의 접촉도 피했다. 북한의 비밀접촉설을 밝힌 지 2시간이 넘도록 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는데 그만큼 당혹스럽다는 방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