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 "법복 안벗을래"

새해 들어 변호사 개업으로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려던 판사들이 다시 법원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최근 들어 변호사수가 증가하면서 변호사 개업이 결코 새로운 미래를 보장하진 못한다는 주위의 만류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대법원 등에 따르면 이 번달 초 인사에서 퇴직판사는 법원장급 4명을 포함해 44명에 불과하다. 이는 판사 퇴직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99년과 2000년 100명과 96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 것이며 지난해의 72명에도 크게 미달하는 수준이다. 판사 퇴직자는 96년 41명, 97년 65명, 98년 80명으로 줄곧 증가추세를 보여왔으나 올들어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며 6년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지난해말 법원 주변에선 올해 약 80명정도의 판사가 사직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실제로 사표를 던진 판사수는 예상치의 절반수준에 그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변호사업계가 불황에서 장기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다 변호사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어서다. 또 법무법인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고 법원의 전관예우가 약화되는 등 변호사업계의 수익 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도 새로운 변호사의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대형 로펌들의 현직 판사에 대한 스카우트가 점차 시들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거처럼 부장급 판사를 지낸 후 변호사를 개업하면 큰 돈을 번다는 얘기는 옛말이 됐다. 변호사 업계에선 "과거에는 부장판사가 퇴직하면 개업 직후 1년간 10억원 번다"는 속설이 있었지만 최근들어서는 "6개월간 5억원 벌면 끝"이라는 말이 새롭게 나돌고 있다. 한편 사직을 철회한 판사들이 늘고 있는 것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한창 일해야 할 중견 판사들이 법원에 남아 사법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고 늘어나는 사법수요에 대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판사 퇴직의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판사들에 대한 처우와 경제적인 여건은 전혀 개선될 움직임이 없다. 또 사회 전반적으로 구조조정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고등부장 승진에서 탈락하는 지방부장급 판사들의 수는 지속적인 증가세를 나타낼 전망이다. 판사들의 경제적인 문제 해결과 진급 누락자 증가는 궁극적으로는 변호사수 증가를 야기시킬 수 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따라서 판사들의 사퇴 행렬이 올 들어 6년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나타냈으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법조인들 일각에선 판ㆍ검사에 대한 처우 개선이 시급한 과제라며 이를 방치할 경우 재판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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