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대전 법조비리 사건이 기업경영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결론부터 말하면 법조비리 사건은 국내 기업들의 해외 수주에 적지않은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난 15일부터 OECD 뇌물방지협약과 국내의 해외뇌물거래방지법이 시행됨에 따라 「부패」여부가 기업의 해외 수주활동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지난 93년 설립된 국제투명성협회(TI, TRANSPARENCY INT'L)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청렴도지수(CPI, CORRUPTION PERCEPTION INDEX)가 98년에 10점만점중 4.2점에 불과, 전체 85개국중 43위를 기록할 정도로 한국의 부패정도가 심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당연히 한국 기업들의 상거래관행도 뇌물 수수 등 부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이란 인식이 확산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법부조차 비리의 사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 법조비리 사건은 국내 기업들의 해외 수주활동에 큰 부담을 줄게 뻔한 상황이다.
◇부패라운드 어떻게 시작됐나=부패라운드의 시발점은 지난 77년 미국의 부패방지법(FOREIGN CORRUPT PRACTICES ACT). 70년대초반 워터게이트사건과 록히드 뇌물사건을 겪은 이후 카터대통령시절 미국은 외국에서 뇌물을 준 미국기업을 처벌하는 부패방지법을 제정했다. 미국의 부패방지법은 뇌물을 제공한 기업에 대해 최고 2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임직원, 주주 등 개인에 대해서는 최고 10만달러의 벌금 또는 징역 5년의 처벌을 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부패방지법으로 인해 미국기업들이 해외 상거래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며 거래상대국의 부패도 함께 추방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다른 나라 기업들이 뇌물 등을 이용, 계약을 따내는데 반해 미국기업들은 뇌물을 줄 수 없어 불리하다는 주장였다. 미 국무성은 지난 96년 한햇동안 외국기업의 뇌물제공때문에 미국기업들이 입은 손해규모가 200억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국제 상거래에서의 부패를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연합(UN),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통해 부패라운드를 추진했다. 결국 OECD가 지난 94년 국제거래상 뇌물에 관한 권고안을 채택하고 뇌물에 관한 실무작업반을 구성, 부패라운드의 시동을 걸었다. 이후 97년5월 OECD가 해외뇌물방지 개정권고안을 채택한데 이어 97년11월 OECD 뇌물방지협약이 체결됐고 이 협약이 지난 15일부터 발효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1월4일 해외뇌물거래방지법을 제정, 15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경쟁을 해야 한다는 취지는 당연하지만 부패라운드의 이면에는 미국 기업들의 경쟁상 불이익을 제거해야 한다는 의도가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부패라운드의 내용=현재 OECD 뇌물방지협약과 우리나라의 해외뇌물거래방지법은 공무원에 대한 뇌물제공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의 부패방지법이 정치인까지 뇌물제공 대상에 포함시킨 것에 비하면 아직까진 약한 수준이다.
협약에 가입한 국가는 뇌물방지를 위해 기업회계감시를 강화할 의무를 갖고 있으며 경쟁기업의 뇌물로 인해 손해를 본 다른 나라의 기업이 문제를 제기하면 뇌물제공 기업의 소속국가는 이를 기소, 처벌해야 한다. 또 협약 가입국가는 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기업(개인)에게 효과적이고 뇌물 크기에 비례하면서 재발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엄한 처벌을 해야만 한다. 법인을 처벌할 수 없는 경우에는 뇌물과 동등한 규모의 벌과금 부과나 재산 몰수 등의 비형사적 처벌을 해야 한다.
이같은 취지에 따라 우리나라의 해외뇌물방지법은 뇌물공여자에 대해 5년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이하 벌금, 소속 법인에 대해서는 10억원이하의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고 뇌물로 얻은 이익이 1,000만원(자연인)과 5억원(법인)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뇌물의 2배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기업에의 영향 및 대책=우리나라의 해외뇌물방지법은 아직까진 상당히 탄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해당 국가의 법령이 허용하는 정당한 업무수행목적의 급행료는 뇌물의 예외로 규정하고 있고 정당 및 정당인에 대한 기부금 제공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의 청렴성, 조달시장 및 정부-기업간 거래의 투명성 등이 부패라운드의 중점 규제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법률상 허용되는 부분이라 하더라도 애매한 경우에는 자칫 해당 기업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 외국의 경쟁기업들이 한국기업의 부패사례, 법조비리 등 국내의 만연한 부패관행 등을 문제삼아 한국기업의 경쟁력을 깎아내리려 할 가능성이 높은 점도 유의해야 한다. 특히 외국의 프로젝트 발주기관이 평가항목에 아예 부패정도를 포함시킬 경우 국내기업들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개별 기업으로서는 가뜩이나 경쟁력이 약하고 국가적 지원체제도 미흡한 상황에서 부패라운드라는 국제규범이라는 부담이 추가되는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이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