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60조원가량이 투입된 지중화사업 비용을 통신사업자가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원 판결이 연이어 나왔다. 지중화사업은 전신주에 설치된 초고속 인터넷망이나 유선방송망 등 통신설비를 땅 속에 묻어 도시 미관을 좋게 하고 시민 통행안전을 개선한다는 목적으로 지난 2004년 계획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안철상 부장판사)는 LG유플러스와 SK네트웍스 등 6개 인터넷ㆍ종합유선방송(SO) 사업자가 강남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지중화비용 부과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구청 처분의 전제가 된 도로 굴착과 복구 공사는 도시 미관을 향상시키고 시민의 통행안전을 위해 수립하고 시행한 '지중화 사업'에 따라 이뤄진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부는 "해당 사업은 모든 공중선을 지중화하는 공사를 의미하기 때문에 노화된 도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도로를 개선하거나 수선하기 위한 도로공사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도로공사를 유발한 이에게 비용을 부담하게 한다는 도로법 76조를 적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지중화사업에 들어간 7억340만원을 원인자 비용 부담금으로 매긴 구청의 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또 서울고법 행정4부(성백현 부장판사)도 LG유플러스 등이 동작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유사소송에서 "지중화 공사는 도로의 신설ㆍ수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도시미관의 향상이 주 목적이기 때문에 사업자들은 공사비용 7억6,000만여원을 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 관계자는 "구청이 처분 근거로 내세운 옛 도로법 76조(원인자 비용부담금)는 지중화 사업비용을 전가하는 적법한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해당 법 조항을 근거로 사업자들에게 비용부담을 매기려 했던 행정기관의 판단은 설 자리를 잃게 됐다.
2007년 강남구청은 서울 강남구 언주로 일대 5.22㎞ 구간에 지중화사업 추진계획을 세우고 초고속 인터넷 사업자에게 통신선을 옮길 것을 요구했다. 해당 구간 공사비만 60억원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통신선이 철거될 위기에 놓이자 LG유플러스 등은 구청과 일단 반반씩 부담하고 소송을 통해 부담할 몫을 가르는 데 합의했다. 그 후 강남구청은 옛 도로법 76조를 근거로 도로 굴착비용 7억340만원을 부과하는 처분을 내렸다.
지중화사업 비용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자 국회는 전기통신사업법(제72조 2항)을 개정했으며 곧 시행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