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건전여신으로 분류되면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므로 수지가 나빠지고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도 어려워진다.따라서 은행이 무리하게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 기업은 담보와 보증만 믿었다가는 큰코를 다치게 되어 있다.우리 은행들의 고질적인 전당포식 여신관행도 이제 고쳐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진작 이 제도가 도입됐다면 금융기관의 부실과 기업들의 과도한 부채체질로 인한 외환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제도의 뒤늦은 도입에 아쉬움이 남는다.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이 IMF사태 1주년을 앞두고 열린 4·4분기 정책협의에서 합의한 금융·기업 구조조정방안에 은행 자산건전성을 위한 새로운 여신분류제도 도입이 포함된 것은 환란의 주요 요인에 대한 처방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5대그룹의 돈줄죄기를 겨냥하고 있는 것 같다. 금융기관의 동일계열 여신한도 감축과 함께 시행시기를 앞당기고 거액여신 총액 감축일정을 제시한 것은 5대 그룹의 자금줄을 압박할 것이다. 5대그룹에 대한 다른 업종 및 같은 업종의 상호지급보증을 각각 올해와 내년말까지 해소키로 의향서에 명시한 것은 정부의 재벌구조조정에 큰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업구조조정에 소극적인 은행에 대해서는 재정지원을 하지 않고 정부가 5대그룹의 구조조정을 채권은행에 맡겨놓지 말고 이행상황을 직접 점검키로 IMF가 양해한 것은 정부에 매서운 채찍질을 승인한 것과 다름없다.
재벌그룹으로선 불만이 적지않을 것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5대그룹에 부당내부거래와 관련해 과징금을 물리고 3년간 한시적이지만 계좌추적권을 갖게 된 것과 같은 연장선상의 재벌때리기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5대그룹의 그동안의 구조조정노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주력계열사를 과감하게 매각하고 업종전문화를 추진하겠다는 약속은 아직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나오지않고 있다. 재벌들의 자금사정이 여전히 좋기 때문에 구조조정에는 관심이 없다는 시각마저 있다. 5대그룹에 대한 정부의 돈줄죄기도 이런 시각과 관련이 있다. 재벌그룹들이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실천하기를 기대한다.
정부도 이번 합의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재벌에 대한 여신규제를 일정대로 추진해야겠지만 촉박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실현가능성과 조화시키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